울산과 여수를 싱가포르와 견줄 아시아 최대의 석유거래 중심지로 만들자는 '동북아 오일허브'가 국회에서 발목이 단단히 잡혔다. 정치권은 급한 법안이 아니라며 사실상 연내 처리하지 않는 데 의견을 모은 모양새다. 반면 계획대로 울산 북항 석유저장시설은 내년 완공될 상황이라 정부와 국회의 엇박자 속에 야심 찬 동북아 오일허브 계획이 용두사미가 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회에 따르면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는 이달 초 법안소위를 열고 국내 보세구역에서 석유제품의 혼합·제조·거래를 허용하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개정안을 논의했으나 합의안 도출에 실패한 채 무기한 심의가 보류되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연내 처리는 사실상 어렵다고 본다"며 "내년 총선과 이후 대선까지 이어지면 법안 통과의 모멘텀은 더 줄어들 것"이라고 전했다.
석대법 개정안은 지난 2008년부터 추진된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의 핵심 법안이다. 사업은 울산과 여수에 석유저장시설을 짓고 이 지역으로 들여온 석유를 혼합·제조해 다른 나라로 재수출하는 요충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13년 여수에 석유저장시설(820만배럴·탱크36기)을 완공했고 내년에는 울산 북항(990만배럴·탱크46기) 비축기지 사업도 마무리된다. 2020년까지 남항(1,850만배럴·86기)까지 완공될 계획을 감안하면 총 3,660만배럴의 석유저장시설이 구축된다. 여기에 정부는 국제 석유 현물·선물 거래소도 만들어 이 지역을 석유 저장과 수출입·거래가 동시에 이뤄지는 오일허브로 키울 생각이다. 정부는 이 같은 계획을 실현하고자 지난해 3월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동북아 오일허브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8월 보세구역 내에서 석유를 혼합·제조할 수 있는 석대법을 입법예고 했다.
하지만 이 법은 지난해 12월 발의된 후 네 차례나 법안소위에 올랐지만 번번이 좌절되고 있다. 야당은 사업성이 낮다는 난색을 표시하는 게 결정적이다. 이 사업은 2009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사업타당성 조사 결과 생산유발 효과가 4조4,647억원, 임금유발효과는 6,059억원, 고용유발효과는 2만2,000명으로 수익성이 있다고 평가가 났다. 특히 동북아 3국인 한국과 중국·일본의 하루 석유 수요가 전 세계의 20%에 육박하기 때문에 울산과 여수 지역을 중심으로 석유제품 제조와 관련한 규제를 풀면 충분히 동아시아의 석유거래 중심지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정유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석대법이 통과되면 국내 보세구역에서 해외업체가 혼합·제조한 석유제품이 국내로 들어와 가격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어서다. 또 해외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세제 혜택이 주어지면 국내 업체와 역차별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저유가로 수익성이 악화한 국내 정유사들도 이 법안 통과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며 "하지만 오일허브 지역에서 제조·혼합되는 석유제품은 대부분 해외 수요를 노린 저품질이기 때문에 품질 기준이 상당히 높은 국내 시장에 유통될 가능성은 작다"고 전했다./세종=구경우기자 bluesquar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