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기업

[이슈 앤 워치]노동개혁의 힘...글로벌 車공장 스페인으로

"노동법 개정으로 투자 매력"

폭스바겐·포드 잇단 러브콜

유럽 2위 車생산국 '우뚝'

노동시장 경직 국내와 대조

프랑스,브라질도 개혁 '고삐'



자국 자동차 브랜드가 없는 스페인이 노동개혁으로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투자를 빨아들이며 유럽 제2의 자동차 생산기지로 부상했다. 한때 재정위기를 겪으며 유럽의 문제아로 불렸던 스페인 경제가 재도약에 성공하자 이에 자극받은 프랑스·브라질 등도 앞다퉈 노동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반면 자동차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여전히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해소되지 않고 있어 자동차 생산기지로서의 경쟁력에 먹구름이 드리운 실정이다.

8일(현지시간) 세계자동차공업협회(OICA)에 따르면 지난해 스페인에서 생산된 자동차는 전년 대비 13.7% 늘어난 273만3,201대에 달했다. 이로써 스페인은 세계 8위이자 독일에 이은 유럽 2위 자동차 생산국으로 우뚝 섰다.


지난 2012년만 해도 세계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던 스페인의 자동차 산업이 부활하기 시작한 것은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잇따른 투자 덕분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독일 폭스바겐은 지난해 스페인 북동부의 팜플로나 공장에 대한 10억유로(약 1조1,085억 원) 규모의 신규 투자계획을 밝혔으며 다임러도 스페인 북부 빅토리아 공장에 2012년 이후 지금까지 10억유로를 추가 투자했다. 미국 자동차 업체 포드는 스페인 발렌시아 공장을 유럽 최대의 생산기지로 만들기 위해 오는 2020년까지 23억유로를 투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러브콜’에 힘입어 스페인의 경제성장률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2013년까지 6년간 마이너스였던 스페인의 전년 대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올해 2·4분기 3.2%까지 치솟았다. 같은 기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전체의 GDP 성장률은 1.6%에 불과했다. GDP에서 자동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5%에서 지난해 8.7%까지 확대돼 자동차 산업이 스페인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고 있다.

스페인이 이처럼 세계적인 자동차 생산기지로 재도약하게 된 배경은 뼈를 깎는 노동개혁이다. 스페인은 2012년 3분기 연속 매출이 감소할 경우 해고를 가능하게 하고 산별 교섭권을 제한하는 내용 등을 담은 노동법 개정을 단행했다. WSJ는 이러한 제도개혁이 지역의 우수한 부품공급 업체들과 시너지를 내면서 스페인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탈바꿈시켰다고 설명했다.


독일 콘티넨탈AG의 에두아르도 곤살레스 이사는 WSJ에 “스페인은 숙련된 노동력을 갖췄으며 유연한 노동시장 덕분에 정리해고에 의지하지 않고도 수요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면서 “매우 특화된 부품공급사들을 갖춘 것도 스페인의 강점”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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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성공사례는 각국 정부의 노동개혁 의지를 자극하고 있다. 스페인에 밀려 유럽 자동차 생산국 순위 3위로 떨어진 프랑스 정부는 무려 세 번이나 긴급명령권을 발동해 노동개혁을 밀어붙였다. 프랑스의 긴급명령권은 정부가 긴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할 경우 총리 발표가 하원 통과와 같은 효력을 내도록 하는 권한으로 정부가 노동개혁을 그만큼 중요하고 다급한 과제로 인식했음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프랑스는 그동안 성역과 같았던 ‘주35시간 근로제’를 손보고 해고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노동법 개정을 단행했다. 이 때문에 프랑스 전역은 격렬한 노동법 반대시위로 들끓고 정부 지지율도 바닥을 쳤지만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노동개혁으로 경제가 회복될 경우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역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보고 개혁을 추진하는 정치적 승부수를 띄웠다.

브라질도 연말까지 노동 유연화를 핵심으로 한 새로운 노동법을 발의하겠다고 지난달 발표한 상태다. 브라질에서는 2003년부터 친노동자 정당이 집권하면서 성과연봉제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경영 위기 때도 임금 및 근로시간 조정을 금지하는 등의 매우 강력한 노동법을 유지해왔다. 이번 노동개혁은 부패혐의 연루로 권한이 정지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을 대신해 정부를 이끄는 보수 우파 성향의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 권한대행이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노동개혁 추세와 달리 국내 자동차 업계는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임금 부담과 낮은 근로 유연성에 허덕이는 실정이다. 한국 자동차 업계의 인건비 증가율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연평균 6.6%로 전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같은 기간 독일 0.4%, 프랑스 4.1%, 일본이 6.6%씩 인건비가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판매 상황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하는 등 근로 유연성이 어느 산업보다 요구되는 분야지만 노사 간 타협을 이뤄낸 사례도 찾아보기 힘들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5년 연속 파업이 반복되는 등 생산환경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이 같은 비효율의 결과 해외 공장 생산물량은 해마다 늘어 올 상반기 처음으로 150만대를 넘어섰다.

업계에서는 한국이 노동 고비용·저효율로 자동차 생산국가로서의 경쟁력을 잃어갈 것이라는 비관론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임금 수준은 높지만 근무 효율성은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진 호주의 경우 제너럴모터스(GM)와 도요타 등 완성차 업체들이 내년 말까지 단계적으로 공장 폐쇄를 추진하고 있다”며 “러브콜을 받는 스페인과 달리 우리나라의 최대 산업인 자동차 산업은 후퇴냐 전진이냐의 기로에 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연유진·박재원기자 economicus@sedaily.com

연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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