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정책

'원금보장' 은행엔 부적합 판정"...年20조 'ELS폭탄' 막기

■ ELS 은행 판매 제한 왜

넓은 지점망 이용 연 4,000억 수수료 챙겨

은행 땅짚고 헤엄치기 영업 관행에 제동도

당국, ELS 총 발행한도 제한 방안도 검토

# 60대 주부 선모씨는 3년 만기 5,000만원짜리 적금을 찾으러 갔다가 은행 직원의 권유로 주가연계신탁(ELT)에 전액 가입했다. 안내서를 읽어도 상품 구조를 이해할 수 없고 원금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에 망설였지만 정기예금의 2~3배 수익률을 제공한다는 은행 직원의 설명에 솔깃해 돈을 맡겼다. 선씨의 아들이 뒤늦게 ELT가 고위험 주가연계증권(ELS) 등에 투자하는 상품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해지하려 했으나 이미 일부 기초자산이 원금손실 구간에 진입(녹인·knock-in)한 뒤였다.

금융당국이 은행의 ELS 판매 제한을 검토하는 것은 선모씨처럼 원금보장 금융상품을 기대하고 방문한 고객에 고위험 투자를 권유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넓은 지점망을 바탕으로 가만히 앉아서 ELS 판매수수료(신탁보수)를 떼는 은행의 영업 관행을 변화시키려는 목적도 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9일 “발행한 증권사 외에는 정확한 구조를 알기 어렵고 일반투자자는 이해하기도 힘든 ELS 등 파생결합증권을 은행에서 판매하는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가능성 등 여러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새로운 투자자 보호 장치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은행이 적극적으로 ELT 판매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ELS의 연간 발행 규모는 77조원(지난해 기준)까지 증가했으나 상당수 상품이 기초자산으로 담은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가 지난해 10월 폭락한 것을 계기로 최근 인기가 시들었다. ELS는 은행 창구에서 연간 20조원 안팎이 팔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ELT는 ELS 등 파생결합증권을 담은 신탁 상품을 말한다. ELS는 지수·종목 등 기초자산의 가치 변동과 수익률이 연계된 것으로 고위험 금융상품으로 분류된다. 은행은 ELS를 직접 발행할 수 없어 ELT와 같은 신탁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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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투자 업계에서도 일찌감치 은행의 판매에 우려를 표명해왔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지난 2월 “은행에서는 원금보장이 되는 파생결합증권 상품만 파는 방식이 좋을 것 같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원금 보장이 안 되는 고위험 ELS 상품은 발행하는 증권사가 직접 책임을 지고 판매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다. 올해 상반기 발행된 20조4,299억원 규모의 ELS 중 원금을 전액 보장하는 상품의 비중은 28.5%(5조8,156억원)에 불과하다.

은행이 신탁 형태로 ELS를 판매하면서 안정적으로 수수료를 꼬박꼬박 챙기는 구조가 새로운 금융개혁을 방해하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은행의 ELT 신탁보수는 수익의 1% 안팎으로 다른 금융상품과 비교해 높은 편이다. 지난해 시중은행 6곳의 신탁보수는 전년 대비 22.6% 늘어난 4,863억원을 기록했다. 대부분 ELS 신탁판매를 통해 거둬들인 이익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상품 개발 등의 별다른 노력 없이도 기존 고객에 대한 가입 권유를 통해 비교적 손쉽게 수익을 낼 수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증권사 역시 과도한 ELS 발행에 책임이 있다. 그동안 증권사는 자기신용으로 발행한 ELS를 팔아 자금을 조달한 뒤 투자 위험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직접 주식·채권·파생상품 등을 매매하면서 수익을 추가로 가져갔다. 판매수수료 외에 부가 수익을 올릴 수 있어 증권사는 재무건전성 악화와 대규모 원금 손실 위험에도 ELS 발행에 열을 올렸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금융당국은 ELS의 총 발행 한도를 정해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월 상환된 ELS 금액만큼만 증권사가 새로운 상품을 낼 수 있도록 해주는 방식이다. 이미 금융당국은 자율규제 형태로 H지수 기반 ELS 발행을 제한하고 있는데 이 같은 규제를 확대 적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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