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방식’과 관련해 해운업계 일각에서는 시스팬이 한진그룹 자산을 담보로 잡은 채권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진해운의 용선료 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회사 정상화 작업 역시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의 한 관계자는 15일 “시스팬이 출자전환 아닌 다른 방식이라면 용선료 조정에 나설 수 있다고 통보해왔다”며 “이에 따라 용선료 조정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다른 방식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한진해운은 그동안 갚아야 할 용선료 대신 회사 주식을 지급(출자전환)하는 방식으로 22개 글로벌 선주사와 용선료 협상을 진행해왔다. 현대상선이 용선료 협상 타결을 이끌어냈던 것과 같은 방식이다.
하지만 세계 해운업계의 ‘큰손’인 캐나다계의 시스팬이 이 같은 방식의 용선료 조정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 협상이 속도를 내지 못했다.
시스팬은 한진해운에 관계사 포함 총 7척의 컨테이너선을 빌려주고 있어 시스팬의 양보 없이 협상을 타결하기 어려운 구조다. 게리 왕 시스팬 최고경영자(CEO)는 “용선료를 깎느니 선박을 회수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되풀이해온 바 있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용선료 대신 받은 주식을 몇 년 동안 묵혀두면 주가 상승에 따라 더 큰 이익을 볼 가능성도 있지만 시스팬 역시 올해 영업이익 급락 등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어 그만한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며 “상장사인 시스팬 입장에서는 주주들의 반대도 염두에 둬야 해 재무제표가 악화하지 않는 방식의 대안을 한진해운에 요구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한진해운이 결국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선주사들이 결국 더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도 시스팬이 입장을 선회한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컨테이너선 시황이 바닥을 치고 있어 선박을 회수할 경우 지금보다 훨씬 싼 가격에 다시 배를 빌려줘야 하는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관심은 양측의 이해를 모두 만족시킬 ‘제3의 대안’이 무엇인지에 있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빌리면 시스팬은 용선료를 깎아주더라도 대차대조표에 문제가 되지 않는, 다시 말해 ‘100%’ 상환이 가능한 방식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방법은 한진해운 자체의 힘이 아니라 조양호 한진 회장과 한진그룹이 여기에 이행보증을 하는 방안을 원할 수밖에 없다. 업계 일각에서 시스팬이 한진그룹 자산을 담보로 잡은 채권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는 이유다.
어떤 방식이든 한진해운의 용선료 조정 협상이 타결되면 회사 정상화 작업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이 당초 목표대로 용선료 30%를 깎는 데 성공할 경우 내년 말까지 한진해운의 부족자금은 1조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여기에 더해 선박을 사들일 때 전 세계 은행에서 빌린 선박금융 상환을 내년 이후로 유예하는 데 성공할 경우 추가로 5,000억원의 부담이 줄어 그룹이 4,000억원가량 지원하면 현재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게 한진해운의 복안이다.
다만 용선료와 달리 선박금융 협상은 예상보다 속도를 내지 못해 회사 정상화를 둘러싼 한진해운과 채권단 간 줄다리기 과정에서 또 다른 불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진해운 상황에 밝은 한 소식통은 “선박금융 협상이 부분적으로 진전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관건은 장기적 관점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어떻게 찾을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2·4분기에도 1,000억원대의 영업적자를 낸 것으로 파악돼 자금경색이 점차 심각해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진그룹에서 육상운송을 담당하는 ㈜한진이 한진해운의 주요 자산인 미국 롱비치터미널 유동화에 참여해 1,000억원대의 지원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이는 단기적 자금난을 해소해줄 뿐이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한진해운이 늦어도 이번주까지 자구안을 제출해야 이를 바탕으로 출자전환 규모 등을 정해 채무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