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이 지난 2000년 이후 17년 만에 일본에 역전됐다.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 영향으로 물동량이 줄어들면서 이를 실어나를 선박을 새로 건조하겠다는 수요가 급감한 가운데 우리나라 조선소들이 확보해 둔 일감(수주잔량)이 일본보다 빠른 속도로 줄어든 결과다.
일본이 자국 발주 물량을 일본 조선소가 수주하는 ‘셀프 수주’ 방식을 통해 국가적 차원에서 수주잔량 감소를 최소화한 데 반해 우리나라 조선업은 속수무책으로 일감이 바닥나고 있다. ★본지 2016년 12월7일자 12면 참조
4일 영국 조선·해운 시황 전문분석 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이날 기준 우리나라의 수주 잔량은 1,989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로 일본의 2,006만CGT에 17만CGT 뒤졌다.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의 수주잔량은 2,046만CGT, 일본은 2,060만CGT로 우리나라 수주잔량이 일본을 40만CGT 차이로 앞섰다.
하지만 한 달 만에 우리나라 조선소들의 일감은 57만CGT가 줄어든 데 반해 일본은 530CGT 감소하는 데 그치면서 수주잔량 기준으로 순위가 뒤바뀌었다.
가장 많은 3,064만CGT 규모의 수주잔량을 보유한 중국을 제외하고 2위인 우리나라와 3위인 일본의 순위가 뒤바뀐 것은 1999년 12월 말 당시 세계 최강이던 일본을 우리나라가 제친 지 약 17년 만이다. 이로써 한중일 3국 가운데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이어 수주잔량 기준 3위로 추락했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조선소들이 지난해에 건조를 마무리해 발주처에 인도한 물량이 일본에 비해 두 배가량 많았다”면서 “이 영향으로 수주잔량 측면에서 일본에 역전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번 한일 간 순위 변동으로 과거 일본·한국·중국 순으로 이어지던 아시아 3국 조선업계 판도는 최근 글로벌 조선업황 침체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과 일본에 치여 조선 변방에 머물던 중국이 일본의 조선업 구조조정의 틈새를 파고들어 급부상하면서 2008년께 1위로 올라섰다. 그 이후 한동안 한국과 일본순으로 2, 3위가 유지됐지만 이번 조선 경기 불황을 계기로 역전됐다.
수주잔량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의 순위가 재역전됐지만 크게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일본이 수주잔량 감소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건조하는 물량 자체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지 경쟁력 측면에서 한국이 열위에 놓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선박 건조 시장이 되살아나면 언제든 한국 조선소들이 차별화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역전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