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1년 동안 진행되는 제4차 석유비축계획(2014~2025년·목표 1억700만배럴)을 내놓은 지 불과 2년여 만에 석유 비축량을 낮추기로 한 것은 우리나라의 경제상황과 연관돼 있다.
4차 계획은 오는 2035년까지 국가 에너지 정책을 담은 2차 에너지 기본계획(2014년)을 토대로 2035년까지 우리 경제가 연평균 2.8% 성장할 것이라는 가정하에 수립됐다. 세계 경제도 꾸준히 성장하면서 석유 수요도 늘어 국제유가가 연평균 1.2% 뛰어 2035년께 배럴당 140달러에 육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은 물론 국제 석유시장 상황이 이 계획이 마련된 지난 2014년에 비해 급변했다.
우리 경제가 견조하게 성장할수록 산업활동은 늘어나고 업체들의 석유 소비도 늘어난다. 특히 국제유가가 미래에 계속 높아질 상황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많은 석유를 비축해놓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평균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할 때 짠 4차 비축 계획이 나온 지 1년여 만에 산유국들이 경쟁적으로 석유를 과잉생산하면서 유가는 20달러대까지 급락했다. 현재도 국제유가는 50달러 수준이다. 예측이 완전히 빗나간 셈이다.
배럴당 100달러 이상의 고유가 시대는 앞으로도 당분간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게 주요 기관들의 예상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에너지 소비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3년 31%에서 2040년 23%로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역시 지난해 6월 2035년까지 장기 전망을 내놓으며 석유 에너지 수요 비중을 56.4%에서 53.6%로 내렸다.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이어 전기차 보급 등의 증가로 석유 수요가 줄어들 상황을 반영한 셈이다. 특히 중국의 산업구조가 엄청난 석유를 사용하고 있는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전환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성장도 갈수록 둔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2014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35년까지 연평균 2.8%를 전망했지만 불과 1년 만인 2015년 이 전망치를 2.3%로 낮췄다. 2.8% 성장률을 예상한 4차 계획에도 2035년까지 우리나라 석유 소비량은 연평균 0.15%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2차 에너지 기본계획에서 2000년 전체 사용 에너지 가운데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63%에서 2012년 49%로 점차 낮아진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우리나라 석유는 약 55%가 산업 부문, 36%가 수송 부문에서 소비된다. 하지만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2015년 에너지 소비량을 보면 전체의 70%를 차지하는 철강과 화학 업종의 부진으로 산업 부문 에너지 소비 증가율은 0.1%에 불과하다. 총 에너지 소비도 3년 연속 1% 미만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성장률이 더 낮아지는데다 우리나라도 바뀌는 세계 환경규제와 에너지 신산업 육성을 위해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차 활용을 높이는 추세라 석유 소비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4차 계획을 수정하는 배경에는 비축량이 늘어날수록 재정 부담도 증가하는 상황도 고려됐다. IEA 권고에 따라 비축유는 일평균 순수입액 기준 90일분 이상 쌓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기준 9,400만배럴, 약 107일치의 석유를 비축하고 있다. IEA가 2013년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상독립시설에 석유 1배럴을 저장하고 유지하는 데 연간 최대 3달러의 비용이 든다. 9,400만배럴이면 1년에 약 3,200억원(환율 1,150원 가정) 규모의 유지비가 드는 셈이다. 세계 시장에서 석유가 남아도는데다 충분한 비축을 한 상황에서 굳이 목표량(1억700만배럴)을 채우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또 들어가게 된다. 반면 700만배럴만 비축량을 줄여도 연간 240억원의 유지비용을 아낄 수 있다.
다만 앞으로 또 변할 수 있는 국제 에너지 시장을 대비해 비축량 조정은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재고관리 비용과 수요예측도 중요하지만 석유 비축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에 계획을 조정할 때는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전했다.
/세종=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