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4차 산업혁명 초기부터 기술혁신으로 눈앞의 ‘노다지(bonanza)’를 캘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거나 기존 사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공을 들여 좀 더 먼 미래를 준비하는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 미국 특유의 ‘실용주의(pragmatism)’가 4차 산업혁명의 대변화에 임하는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미국 4차 산업혁명의 기관차인 실리콘밸리가 ‘빅데이터’와 ‘가상현실(VR)’ 기술을 동영상 콘텐츠와 접목해 업계에서 당장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비밀병기로 보고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가령 지난 1997년 설립된 넷플릭스는 2013년 빅데이터를 이용해 시청자가 선호하는 배우와 장르를 선정, 공전의 히트를 친 드라마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를 제작해 단숨에 미 최대 유료방송사업자로 올라섰다.
지난해 10월 미국 2위 통신 업체인 AT&T가 타임워너를 854억달러(약 97조4,414억원)에 전격 인수하기로 한 데도 넷플릭스의 성공 사례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랜들 스티븐슨 AT&T 최고경영자(CEO)는 “타임워너 인수로 혁신과 수익을 모두 추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며 통신·방송 융합을 통한 미디어 빅뱅이 업계에 새 지평을 열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이 인수가 130여년 역사의 AT&T에도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스티븐슨 CEO는 “고객들은 자신이 본 영상을 원하는 대로 자르고 편집해 주변에 메시지나 소셜미디어로 공유하는 것을 매우 원한다”며 타임워너 인수 후 통신·방송 융합 서비스의 한 단면을 앞서 제시했다. AT&T는 빅데이터에 기반을 둔 동영상물을 설계 중인 5세대(G) 통신망에 얹으면 숙적 버라이즌을 따돌리는 것은 물론 페이스북·구글 등이 점령한 인터넷 시장으로까지 위상을 넓혀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타임워너 인수를 검토했다가 AT&T에 고배를 마시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기업 애플은 이 때문에 올 하반기부터 자체적으로 영화와 드라마 제작에 나서겠다고 지난달 중순 밝혔다. 팀 쿡 애플 CEO는 “케이블 업계가 붕괴하면서 가속화될 미디어 산업 변화에 참여할 것”이라며 오리지널 동영상 확보가 ‘메가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음성인식과 인공지능(AI)을 제품 판매에 활용해 엄청난 매출을 올린 아마존도 자체 스튜디오를 확보한 데 이어 최근 영화 제작 및 배급에도 투자를 늘리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해 박찬욱 감독의 작품 ‘아가씨’ 북미 시장 배급권을 사들이기도 했다. 구글 역시 2006년 거금인 16억5,000만달러를 투입해 인수한 동영상 커뮤니티 사이트인 유튜브를 통해 2015년부터 유료방송서비스 ‘레드(Red)’를 실시한 데 이어 최근 자체 프로그램 제작에도 나서고 있다.
미 IT 업계는 미디어 산업의 한 분야인 가정용 홈비디오 시장 규모만 2015년 6,900억달러로 스마트폰 시장을 추월한 데 이어 오는 2019년 8,3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4차 산업혁명 보고서에서 “빅데이터와 VR 기술은 영화와 방송 등 미디어에서 막대한 위력을 발휘하며 일상의 생활 패턴도 확 바꿔놓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뉴욕=손철 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