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어떤 ‘돼지엄마’가 되어야 할까

김민형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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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엄마’


이 단어의 뜻을 안다면 적어도 자녀 교육에 전혀 문외한은 아니다. 국립국어원이 지난 2015년 신어로 지정해 등록한 단어로 ‘교육열이 매우 높고 사교육에 대한 정보에 정통하여 다른 어머니들을 이끄는 어머니를 이르는 말’이다.

여기서 돼지는 새끼들을 우르르 몰고 다니는 엄마 돼지의 모습을 빗댄 것이다. 나이가 비슷하거나 같은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엄마들이 사교육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한 엄마의 ‘지도’에 따라 자녀의 학원이나 학습지를 결정하는 행태를 돼지 가족에 비유한 것이다.


돼지엄마는 사실 누구나 될 수 있다. 교육 관련 정보력의 상대적 차이에 따라 돼지엄마가 되기도 하고 새끼가 되기도 한다. 스스로는 ‘비판적 돼지엄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신보다 사교육 정보가 부족한 주변 엄마들에게는 그 엄마가 돼지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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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엄마는 학원이나 학습지 등 사교육 업체들의 최우선 공략 대상이다. 특히 서울 대치동·목동 등의 ‘사교육 1번지’ 엄마들이 VIP 고객이다. 지역 자체의 사교육 수요가 워낙 높을 뿐 아니라 이곳에서 인기를 끌면 순식간에 다른 지역으로도 입소문이 퍼지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지역별 대학입시 설명회가 많았지만 요즘은 브런치를 즐기며 엄마들이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을 알려주는 맞춤형 설명회가 인기다.

자녀의 미래를 위해 교육제도의 흐름을 파악하고 적합한 사교육 정보를 얻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 공교육이 교육의 모든 것을 책임지지 못하는 현실에서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한 부모의 관심을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관심이 지나쳐 간섭으로 변질된다는 점이다. 요즘 학생들은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무언가를 배우는 데 쓴다. 그 시간에 엄마가 어떤 학원을 다닐지,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모든 것을 정해주면 아이는 스스로 결정하고 결과에서 교훈을 얻는 방법은 아예 배우지 못한다. 오죽하면 취직한 자녀의 불평을 들은 엄마가 회사로 찾아와 상사에게 전달하는 촌극이 벌어질까.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돼지엄마가 되는 것을 피할 길이 없다. 엄마든 아빠든 성별은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돼지엄마가 돼야 할지다. 정보를 습득하고 조언을 해주면서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법을 배우도록 할지, 한 치라도 잘못 디디면 낭떠러지라는 생각에 아이의 모든 삶을 디자인할지를 말이다.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기자는 오늘 아침에야 그것을 알아차렸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큰딸이 운동화와 부츠를 사이에 두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오늘 무슨 신발 신어야 해?” 한 마디 걸치고 출근길을 나섰다. “네가 신고 싶은 것.” kmh204@sedaily.com

김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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