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광해군 시절 허준 선생은 하얗게 부서지는 특정 종류의 진흙덩이를 복용하면 설사가 멎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백설지’로 불린 이 점토덩어리의 효능은 허준 선생의 의서 ‘동의보감’에 담겼다. 오늘날 정작 그 가치를 알아본 것은 허준의 후예가 아닌 유럽 기업이다. 프랑스 제약사 입센이 서양 학명으로 ‘벤토나이트’라고 명명된 이 광물가루를 설사약으로 가공해 특허를 내고 전 세계 시장의 절반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벤토나이트 원석의 시세는 1톤당 5만~6만원 선이지만 분쇄, 정제돼 의료·미용 원료로 거듭나면 톤당 1,000만원대로 몸값이 치솟는다.
우리나라도 이처럼 흙덩어리·돌더미를 노다지로 만드는 신(新)연금술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헐값으로 가치가 매겨지던 비금속광물을 고부가가치 신소재로 변신시키는 광업 르네상스의 서막이 오는 2022년부터 열린다. ★관련기사 3면
7일 미래창조과학부·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토종 비금속광물들을 의료·식품·산업소재로 개발하기로 하고 앞으로 5년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을 통해 관련 연구과제 사업을 진행한다. 이를 위한 연구시설은 내년 완공, 가동되며 주변에 관련분야 기업들을 입주시키기 위한 산업복합단지도 단계적으로 조성된다. 지질연은 이번 연구과제에서 얻어지는 기술을 기반으로 상용화를 위한 시제품 개발작업도 별도로 벌이고 있다. 한 당국자는 “국내 광물 중 벤토나이트, 제올라이트(불석), 일라이트(견운모) 등 3종을 우선 신소재로 개발하고 이후 적용 광물의 범위를 확대하려 한다”며 “광업은 사양길로 접어든 2차산업으로 치부돼왔는데 생명공학(바이오) 등 지식산업과 접목하면 첨단의 6차산업으로 부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한 산업복합단지는 벤토나이트 등이 풍부한 경북 경주·포항 일대에 마련된다. 여기에는 주로 중소·중견기업들이 입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당국의 방침이다. 단지 내에는 광물의 단순가공 설비뿐 아니라 의약품·식품 등으로 개발할 수 있는 GMP인증 인프라도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강일모 지질연 지질신소재연구실장은 “바이오기업들이 앞으로 개량신약을 만들 때 임상시험 단계에서부터 가급적 토종광물을 우선적으로 활용해 개발하도록 유도할 것”이라며 “이렇게 우리의 광물을 기초로 신약을 만들면 해외 어느 나라에서 해당 약품을 제조하더라도 반드시 국내 토종광물을 원료로 사용해야 하는 ‘독점효과’가 나기 때문에 고부가 광물자원의 수출길도 열리게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