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다시 불러들였다. 재계에서는 이미 영장이 한 차례 기각된 터라 “무리한 수사”라는 목소리가 높다. 수사기간 연장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초재기에 몰린 특검의 이번 착수는 묘수일까, 패착일까.
지난달 19일 영장 기각 이후 특검 내부에서는 재청구에 대한 의견이 엇갈렸다. 특검 내 일부 검사들이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영장이 재차 기각되면 특검팀으로서는 막판 수사에 치명적인데다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길 수 있어서다. 하지만 박 특검은 특유의 뚝심을 발휘했다. 전의를 다져 삼성을 겨냥한 전방위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달 초 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 압수수색과 삼성 계열사 자금담당 임원 줄소환 등은 특검의 의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특검이 이 부회장 재소환 카드를 내민 배경에는 대통령 압박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면조사가 여의치 않은데다 삼성을 두드려 대통령을 조사대로 끌어내겠다는 계획이다. 대통령이 또다시 불응하면 대면조사를 건너뛰고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는 복안도 깔려 있다.
특검이 최근 대통령에 대해 ‘기소 중지’ 가능성을 언급한데다 최순실씨 소환조사 이후 곧바로 이 부회장을 다시 소환한 정황을 보더라도 ‘대통령이 안 되면 삼성 총수라도’라는 입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대 과제인 대통령에 대한 기소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삼성 총수 구속이라는 대어를 낚을 수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재계 저승사자’로 불렸던 박 특검 입장에서는 이 부회장 영장 청구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재계 등 각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특검이 도박에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이미 뇌물을 받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인 최씨를 불러 조사한 만큼 특검이 구속영장 기각 당시 법원이 명시한 ‘뇌물수수자에 대한 조사를 해야 한다’는 조건에 충족했다고 판단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검은 구속영장 기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대안도 준비했다. 이번에는 이 부회장뿐만 아니라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 등 고위임원도 구속 기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규철 특검 대변인은 “지난번처럼 누구를 불구속 처리한다는 방침은 모두 바뀐 상태로 원점에서 새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 임원 가운데 일부만 영장이 발부되더라도 삼성의 조직적인 판단으로 대통령의 비호를 받는 최씨 측을 지원했다는 혐의를 소명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검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 재소환이 ‘대면조사 없이도 대통령의 뇌물죄를 밝힐 충분한 증거와 증언을 확보했다’는 무언의 메시지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지난달 영장 청구 직전 특검이 밝힌 것처럼 확실한 한방(물증)이 없다면 법리 공방만으론 영장 발부를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도박의 성패는 지난 3주간 과연 어떠한 물증을 확보했느냐에 달려 있다.
/안현덕기자 alway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