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은 A씨는 지난달 항암치료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유전자 2종을 검사했다. 어떤 항암제를 쓸지, 예후는 어떨지 등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병원마다 제각각인 검사비(약 70만~90만원)는 모두 본인이 부담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오는 20일께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Next Generation Sequencing) 유전자 패널 검사기관’으로 승인하는 병·의원에서 NGS 검사를 받으면 건강보험이 적용돼 45만~66만원(본인부담률 50%)만 내면 수십~수백 개의 암 관련 유전자에 돌연변이 등이 생겼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유전자 패널은 많은 암 환자에게서 변이가 확인된 유전자의 묶음을 말한다. 따라서 진단·치료 시간과 검사비용을 줄일 수 있다.
◇기존 항암제 표적 유전자 200개 안팎=이달부터 허용되는 NGS 검사 대상은 암 환자와 유전성 질환자·의심환자다. 고형암은 위암·폐암·대장암·유방암·난소암·악성뇌종양 등 10종, 혈액암은 급성 골수성·림프구성 백혈병 등 6종(5개군), 유전성 질환은 유전성 난청·망막색소변성 등 4개 질환군을 아우른다.
NGS 검사는 질병 진단, 약제 선택, 예후 예측 등에 도움이 되는 수십~수백 개 유전자의 변이 여부 등을 1회 검사로 확인할 수 있어 미국·프랑스·일본 등 정밀의료 선진국에서 인기가 높다. 개인별 유전정보에 근거한 맞춤 의료로 치료 효과를 높이거나 불필요한 치료를 줄일 수 있어서다.
미국의 국립종합암네트워크(NCCN)는 지난 2014년 비세포성 폐암 4기 환자의 경우 EGFR·ALK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지 NGS 검사 등을 하도록 권고했다. 폐암 환자의 40%, 5%에게 이들 유전자의 변이가 있는데 해당 유전자를 억제하는 항암제를 써야 치료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대장암 환자의 25~77%도 EGFR 유전자의 활동이 지나치게 왕성하므로 EGFR 억제제로 괜찮은 항암치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김태유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암 관련 유전자가 500여개쯤 되는데 기존의 항암제는 이 중 200개 정도의 유전자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변이된 유전자와 항암제의 표적(타깃 유전자)이 일치하지 않으면 항암치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박웅양 삼성유전체연구소장은 “NGS 검사를 하는 암 환자는 대개 1·2차 항암제가 안 듣거나 재발한 분들이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도 표적항암제(약 60개)를 쓸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학병원 등 약 20곳서 검사 가능할 듯=NGS 검사의 본인부담액은 유전자의 수나 길이에 따라 레벨1이 45만~46만원, 레벨2가 64만~66만원 수준이다. 레벨1은 30개(유전성 질환), 50개(암) 이하나 길이 150kb 이하의 유전자를 검사할 때 적용된다. 레벨2는 이보다 유전자 수가 많거나 길이가 길 때 적용된다. 상한은 없지만 병·의원에 따라 200개 또는 400개를 넘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NGS 검사 여부는 큰 병원의 폐암센터·유방암센터·대장암센터 등에서 여러 진료과목 의사가 협진(다학제진료)하는 과정에서 환자와 결정하게 된다. 유전성 난청·망막색소변성의 경우 이비인후과·안과에서 결정이 이뤄진다.
NGS 검사를 하는 병·의원은 최대 ‘22곳+α’다. 지난달 말 NGS 검사기관 승인신청서 접수가 끝났는데 22개 의료기관이 방문 접수했고 등기우편접수 기관은 집계하고 있다. 암 환자 등이 주로 찾는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은 43곳 중 14곳이, 종합병원과 의원은 3곳, 5곳이 방문접수를 했다. 일부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NGS 임상검사실 인증,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행위전문평가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탈락할 수 있다. 복지부가 이달 1일부터 승인받은 것으로 간주하기로 해 승인 전이라도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지만 본격적인 서비스는 승인일 이후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