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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해빙’ 김대명, 섬세한 ‘소수점 연기’를 펼치는 ‘요물’ 같은 배우

‘해빙’을 연출한 이수연 감독은 ‘해빙’의 제작보고회에서 김대명에 대해 ‘요물 같은 배우’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외모만 놓고 보면 목 늘어난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외모의 김대명은 어떻게 이수연 감독에게 ‘요물’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영화 ‘해빙’을 보고 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해빙’에서 김대명은 서울 강남에서 잘 나가던 개업의였지만 경영 실패로 병원 문을 닫고 지방 신도시로 내려와 월급의사를 하고 있는 승훈(조진웅 분)이 세들어 사는 건물의 건물주이자, 건물 1층에서 식육식당을 운영하는 ‘성근’을 연기한다.

배우 김대명이 인터뷰를 갖기 전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사진 = 지수진 기자배우 김대명이 인터뷰를 갖기 전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사진 = 지수진 기자





‘해빙’에서 김대명이 보여주는 ‘성근’의 캐릭터는 실로 오묘하다. 외관상으로는 평범한 동네 정육점 아저씨 같지만, ‘승훈’에게 친근한 척 다가서며 건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어딘지 쉽게 다가서기 힘든 거리감이 느껴진다. 친근하면서도 동시에 낯선 공포를 숨긴 인물. 그것이 바로 김대명이 연기하는 ‘성근’이다.

김대명은 ‘해빙’에서 보여준 이런 ‘성근’의 모습을 일명 ‘소수점 연기’라고 설명했다. 연기를 1에서 10까지의 단계로 구분할 때 보통 때는 5나 6 정도로 연기의 수위를 조절한다면, ‘해빙’에서 ‘성근’은 좀 더 연기를 세밀하게 나눠서 5.3이나 6.7 정도의 소수점 단위까지 계산해 접근했다는 것이다.

“성근은 감정의 기복이 큰 캐릭터가 아니에요. 그래서 계산이 잘 안 되면 완전히 방향이 어긋나버릴 수 있어서 더욱 예민하게 접근했어요. 성근을 연기하는 것보다 더욱 신경이 쓰인 것은 성근을 연기하는 내 모습이 어떻게 보여질까 하는 부분이었어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성근은 승훈을 챙겨주는 좋은 사람이지만, 승훈이 바라보는 성근의 그런 호의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여지는가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김대명의 말처럼 ‘해빙’ 속 ‘성근’의 연기는 아는 사람만 알 수 있을 정도의 미묘함이 넘쳐난다. ‘성근’이라는 캐릭터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하게 보이면서도, ‘승훈’의 눈에는 그 자연스러움이 무언가를 숨기기 위한 위장처럼 느껴지는 위화감이 있어야 했고, ‘승훈’이 ‘성근’을 본격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한 순간에는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와야만 했다. 이 미묘한 연기의 지점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김대명의 역할이었다.

배우 김대명이 인터뷰를 갖기 전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사진 = 지수진 기자배우 김대명이 인터뷰를 갖기 전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사진 = 지수진 기자



“촬영 내내 정말 예민했어요. 그래서 수시로 이수연 감독님하고 이야기하며 대사도 많이 바꿨어요. 가게가 3일 동안 쉰다고 할 때 조진웅씨가 절 보고 도망가는 장면은 원래 ‘어제 오셨던 분 잘 들어가셨어요? 어젯밤에 혹시 뭐 가져간 것 없으세요?’라고 직접적으로 보여지는 대사였어요. 근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차마 그걸 못 물어보겠더라고요. 그래서 ‘어젯밤에…아니에요’라고 얼버무리는 것이 좀 더 중의적인 느낌을 줄 것 같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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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를 하면서 호흡 하나 정도의 차이를 굉장히 신경 썼어요. 예를 들어 조진웅씨와 고기를 먹는 장면에서 조진웅씨의 질문에 ‘성근’이 질문을 듣고 바로 대답을 하느냐, 아니면 한 템포를 쉬고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성근’의 대답이 지니는 느낌이 확 달라지거든요.”

호인(好人)과 악인(惡人) 사이의 경계를 미묘하게 넘나드는 ‘성근’의 캐릭터를 한층 맛깔나게 살려주는 것은 바로 외모와는 다르게 살짝 하이톤이 감도는 김대명의 목소리였다. 사실 김대명은 tvN 드라마 ‘미생’을 통해 본격적으로 관객들에게 알려지기 이전, 하정우 주연의 ‘더 테러 라이브’에서 하정우와 전화통화를 하는 테러리스트의 목소리를 연기하며 독특한 긴장감을 선사하는 목소리의 소유자라는 것을 인증하기도 했다.

“저는 그동안 제 목소리가 특이한 장점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전 항상 한석규 선배님이나 이선균 선배님처럼 중후한 목소리를 가진 배우들이 부러웠고, 그래서 목소리를 바꿔보려고 연습도 많이 했는데 그게 연습한다고 바뀌는게 아니더라고요. 그래도 ‘더 테러 라이브’도 그렇고, ‘해빙’도 그렇고 감독님들이 제 목소리에서 다른 모습을 봐주신다는 것은 배우로서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배우 김대명이 인터뷰를 갖기 전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사진 = 지수진 기자배우 김대명이 인터뷰를 갖기 전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사진 = 지수진 기자


배우 김대명이 인터뷰를 갖기 전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사진 = 지수진 기자배우 김대명이 인터뷰를 갖기 전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사진 = 지수진 기자


김대명에게는 두 가지의 얼굴이 있다. 하나는 ‘미생’이나 최근 종영한 웹드라마 ‘마음의 소리’를 통해 익숙한 코믹하고 편안한 이미지, 그리고 다른 하나는 ‘더 테러 라이브’의 목소리, 그리고 ‘해빙’을 통해 만들어진 익숙하면서도 불온한 기운이다. 한 배우가 이처럼 두 가지의 극단적 이미지를 동시에 오가기는 쉽지 않지만, 김대명은 중립적이지 않은 외모로도 이 드넓은 간극을 제법 능숙하게 채워나간다.

“인간적으로는 물론 저도 편한 연기가 좋아요. ‘마음의 소리’나 ‘미생’ 같은 작품을 하면 예민하게 연기를 할 필요가 없으니 정신적으로 아프지 않거든요. 근데 반대로 ‘마음의 소리’ 같은 코믹한 작품을 하다가 제가 화가 나면 연기하기가 힘들어요. ‘해빙’ 같은 작품은 촬영 전후로도 날이 서 있어야 하니 힘들지만 분출하는 연기는 오히려 쉬워지죠. 서로 장단점이 있어요.”

“언젠가 친구와 제 필모그라피를 두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되게 이상하다고. 예를 들어 FBI 같은 애들이 제 신상조사를 한다고 하면, 제 출연작들을 보고 또라이라고 할 것 같은 거에요. 그래도 관객들이 이런 제 변신을 편하게 봐주시다보니 캐릭터 변주에도 도움이 되고, 관객들 입장에서는 배우 같지 않은 주변의 아무개처럼 평범한 저 같은 사람이 이런 저런 극단의 연기를 하는 것이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접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서경스타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

원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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