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가 지난달 말 전주혁신도시로 이전한 뒤 처음 실시하고 있는 공개채용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30여명을 뽑는데 300명 이상이 지원해 흥행에는 일단 성공했다. 하지만 막상 지원서류를 들춰봤더니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로 턱없이 부족한 능력의 지원자들이 몰렸다. 기금운용본부는 전주 이전 후 눈에 띄게 하향 평준화된 지원자들의 경력에 당초 예정됐던 선발인원을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기금본부가 지난 13일 마감한 2017년 1차 기금운용 전문가 채용에 330명이 지원했다. 11대1의 높은 경쟁률이다. 2015년 상반기 경쟁률(14대1)에는 못 미치지만 1999년 기금본부 출범 후 역대 최저 경쟁률을 기록한 지난해(7대1)보다 크게 상승했다. 국민연금 내부는 물론 금융투자업계는 기금본부가 전주에 제대로 안착할 수 있을지를 가늠할 잣대로 이번 공개채용을 주목해왔다. 일단 경쟁률만 놓고 보면 전주 이전에 따른 우려를 불식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입사 지원서류를 들춰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금본부가 330명의 지원자 서류를 확인한 결과 지원자격에 맞지 않아 자동으로 탈락한 인원이 140명에 달했다. 겉으로 드러난 경쟁률과 달리 실제 경쟁률은 역대 최저인 7대1에도 미치지 못했다. 서류를 통과한 인원 가운데서도 당초 기금본부가 기대했던 경력 수준을 만족하는 지원자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부터 올 2월까지 해외 대체투자실과 더불어 가장 많은 인력이 유출됐던 국내 대체실의 경우 50대 후반의 부동산업계 종사자가 하위직(책임)인 차장에 지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외 관련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고급인력들이 막대한 국민연금의 자금을 운용할 수 있다는 매력에 서울 신사동 기금본부 사옥을 찾았던 것과 대비된다. 전직 기금본부 운용역 출신 A씨는 “과거에는 기금본부에 지원하는 것을 엄두도 내지 못했던 사람들도 전주 이전으로 경쟁률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지원한 것 같다”며 “정부가 기금 운용역의 처우 개선을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번 채용과정에서 드러나듯 운용역들의 하향 평준화를 막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치권에서는 우수인력 유지 차원에서 전주의 한 대학에 기금학과를 설립해 기금본부 운용역들이 겸임교수로 활동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신규 우수인력이 유입되지 않는 상황에서 겸임교수라는 당근을 줘 남아 있는 우수인력들의 추가 이탈을 막자는 취지이지만 현행 규정상 기금 운용역들은 겸임이 금지돼 있다. 국민연금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기금 운용역들의 겸임 금지 취업 규칙을 모를 리 없는 정치권이 기금학과 설립을 얘기하는 것은 결국 전주 지역 학생들을 채용해달라는 의미가 아니겠느냐”며 “기금본부는 국민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곳인 만큼 금융투자업계 최고의 인재들이 와서 일해야 하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기금본부는 서류를 통과한 지원자들 중에서 다시 면접과 평판 조회 등을 거쳐 오는 5월까지 채용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단 적격자가 없으면 아예 채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연금의 한 관계자는 “당초 30명 안팎을 뽑기로 했지만 선발인원에 너무 집착하면 기금운용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능력이 있는 지원자만 선발한다는 원칙 아래 채용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우·임세원기자 ingagh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