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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기획] ‘힘쎈여자 도봉순’, ‘센 여자’ 활용법 완벽 해부…로맨스↑ 공감↓

여성 히어로물의 가능성 연 ‘완벽한 도봉순’의 반전매력에 열광

‘여성이 여성을 구한다’는 독특한 드라마는 충분히 매력적

반면 특별한 여성 히어로도 결국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공주였다

가상 세계와 현실의 틈은 좀처럼 좁혀지기 어렵나

도봉순 스스로가 괴력을 가진 인간으로 인정 받았어야

진정한 히어로가 되지도, 그렇다고 시대의 여성을 대변하기에도 역부족

‘진정으로 힘 센 여자란 누구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다

[SE★기획] ‘힘쎈여자 도봉순’, ‘센 여자’ 활용법 완벽 해부…로맨스↑ 공감↓

‘힘쎈여자 도봉순’이 끝났다. ‘여자 도봉순’의 로맨스는 마지막까지 완벽했다. 그러나 ‘힘 센 여자’를 완벽히 그려냈냐고 묻는다면, “글쎄”다.


‘여자가 남자보다 힘이 세다면 세상은 어떻게 됐을까’라는 발칙한 물음에서 시작된 JTBC 금토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은 명백한 성과를 얻었다. 자체 최고 시청률 9.668%(닐슨코리아 전국 유료플랫폼 가입가구 기준)를 기록, 종합편성채널 드라마 역사를 새로 썼다.

/사진=JTBC ‘힘쎈여자 도봉순’/사진=JTBC ‘힘쎈여자 도봉순’


‘힘쎈여자 도봉순’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겼던 남녀의 신체적 차이를 비튼데 의미가 있다. 주인공 도봉순(박보영 분)은 모계 유전에 의해 괴력을 갖고 태어난 여자다. 조폭을 혼자 날려버리는 도봉순과 그 모습에 반한 안민혁(박형식 분)의 관계는 신선한 재미를 안겼다. 작고 연약해 보이는 여성이 자기보다 훨씬 큰 남성을 보호하고 구해주다니! 시청자들은 반전매력에 열광했다.

여자주인공을 전면에 둔 드라마가 높은 성적을 거뒀다는 것은 분명 좋은 징조다. 사실 국내 영화계에서 여성을 내세운 작품은 크게 흥행하지 못했다. 작품의 완성도는 차치하고 우선 관객 수에서 큰 힘을 못 썼다. 여배우들이 영화의 원톱을 맡는 비율도 남배우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 그와 비교해 ‘힘쎈여자 도봉순’은 박보영이라는 20대 여배우를 앞세웠음에도 높은 화제성을 얻었다. 브라운관에서 여배우의 위상을 높이는데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힘쎈여자 도봉순’은 여성 히어로물의 가능성을 열었다. 여성 혐오가 기반이 된 여성 연쇄 납치 사건을 푸는 과정에서 도봉순은 괴력을 발휘해 납치된 여성들을 구했다. 차와 폭탄을 던져버리고 총을 맞으면서 범인 검거에 가장 큰 공을 세웠다. “그 자식, 내 손으로 잡는다”라는 자신과의 약속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여성이 여성을 구한다는 단순한 구조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힘쎈여자 도봉순’은 이처럼 독특한 로맨스와 스릴러를 섞으며 화제의 중심이 됐다.


그렇기에 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 작품이 발칙한 상상을 곁들인 ‘로맨스릴러’에서 그치지 않고 설득력을 지닌 공감 드라마로 나아갔으면 했다. 색다른 시도는 좋았으나, 완결로 내딛는 발걸음 중 의구심을 갖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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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JTBC ‘힘쎈여자 도봉순’/사진=JTBC ‘힘쎈여자 도봉순’


우선 히어로로서 도봉순의 이야기다. 태어나고 지금까지 괴력을 숨겨온 도봉순은 게임 속에서나마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연인의 도움으로 기회를 얻어 게임 출시까지 했으나 결국 개발팀에서 쫓겨났다. 현실에서 다른 이를 돕기 위해 힘을 쓰는데 몰두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가상 세계에 숨지 않으니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도봉순은 여전히 자신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남자였어도 계속 숨었을까? 이미 한국의 헐크로 불리고 있겠지 싶다. 흑인 여성을 조명하며 호평을 얻은 영화 ‘히든피겨스’ 속 “자네가 백인 남자였다면 엔지니어를 꿈꿨을까”라는 질문과 “그럴 필요도 없죠. 벌써 됐을 테니까”라는 대답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제대로 된 여성 히어로물을 그리고 싶었다면 안민혁이 도봉순 대신 용감한 시민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봉순 스스로가 괴력을 가진 인간으로 인정받았어야 했다.

드라마를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데서도 섭섭함이 따른다. 힘 센 도봉순이 안민혁을 지켜주겠다고 한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현실의 여성들에게는 도봉순만한 힘이 없다. 아무리 도봉순이 활약 한다더라도, 괴력을 사용하는 면모만 되풀이 된다면 공감을 얻기 힘들다. 게다가 도봉순은 지난 7일 방송분에서 그동안 팽배했던 여자주인공의 전형적 패턴을 따랐다. 연쇄 납치범을 잡으려다 힘을 잃어 위기에 빠졌고, 두 남자주인공이 그를 구하러 왔다. 익숙한 그림이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히어로가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공주로 변했다.

대부분의 국내 드라마에서 로맨스란 필수 불가결한 요소임은 알지만 아쉽다. 힘없는 ‘평범한’ 여자는 남자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의문이 든다. 힘을 잃고 나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도봉순과 그를 지켜준다고 한 안민혁이다. 판타지적 요소를 부여받지 못하는 현실의 여성들은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일까. 도봉순이 연쇄 납치범을 잡을 때, 대리만족과 통쾌한 여운을 주려고 했다면, 여성들의 공감이 선행됐어야 한다. 허나 도봉순은 하나의 도봉순일 뿐, 여성을 대변하는 인물이 되기엔 부족했다.

/사진=JTBC ‘힘쎈여자 도봉순’/사진=JTBC ‘힘쎈여자 도봉순’


‘힘쎈여자 도봉순’의 도봉순은 좋았다. 박보영이 아주 귀여우면서도 능청스럽게 표현해내니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 속 도봉순이 밖으로 나왔을 때 존재 가치는 ‘없음’에 가깝다. 사회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부족했다. 도봉순은 초기의 기획의도인 ‘여자가 남자보다 힘이 세다면 세상은 어떻게 됐을까’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발칙한 상상은 좋았으나 도봉순의 로맨스에만 큰 힘을 발휘했을 뿐, 진정으로 힘 센 여자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그려내지 못했다. 진정한 히어로가 되지도, 그렇다고 시대의 여성을 대변하지도 못했다.

좋은 기획 의도를 가졌음을, JTBC가 시간대를 옮기면서까지 주력한 프로그램임을 알기에 하는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보였기에 더 그렇다. 대부분의 국내 드라마가 기승전로맨스 형식을 따른다지만, ‘힘쎈여자 도봉순’ 역시 연일 일어나는 여혐 논란을 트렌디하게 반영한 로맨스 드라마에 그치고 말았다. 드라마가 남긴 기획 의도와 독특한 여성 캐릭터, 20대 여배우의 눈에 띄는 활약까지…. 이 장점을 이정표로 삼아 더욱 만족할만한 드라마가 탄생할 수는 없을까. 도봉순에게서 받은 희망을 바탕으로, 계속 기대를 걸어볼 생각이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양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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