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제도

[로터리] 인물이냐 정책이냐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대선후보들의 공약이 발표되고 TV토론도 시작됐다. 어떤 사람은 도덕성과 능력을 겸비한 훌륭한 인물을, 또 어떤 사람은 인물보다는 공약이나 정책을 보고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물이 중요한 것은 틀림없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도 도덕성과 능력이 한참 부족한 인물들이 법과 제도를 무시한 채 사익 추구를 위해 과도한 권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또한 ‘머슴’ 같은 사람이나 ‘머슴’이 되겠다는 사람도 부적절하다. “국민을 주인처럼 받들고 섬기겠다”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머슴인가 지도자인가. 국정농단 사태에서도 시키는 대로 일하는 종이나 머슴 같은 사람은 있었지만, 제대로 된 지도자는 볼 수 없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돌쇠나 마당쇠 같은 머슴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많다. 부족한 것은 진정한 지도자다. 우리에게는 비전과 용기를 갖고 국가와 국민을 이끌어 줄 지도자가 필요하다. 지도자라면, “이끌든지 아니면 떠나라(Lead or Leave).”


대선후보들마다 4차 산업혁명을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미래지향적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는 ‘고슴도치형’이 아니라 ‘여우형’이다. 클라우스 슈밥은 4차 산업혁명이 속도, 범위와 깊이, 시스템 충격 측면에서 이전과 다르다고 했다.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진행되는 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지식하게 시대착오적인 자기만의 신념을 고수하는 고슴도치형 지도자는 부적합하다. 그보다는 민첩하게 주변 상황을 폭넓게 살피면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는 여우형 지도자가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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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인물을 지도자로 뽑아야 한다는 생각은 기원전 4세기 인물인 플라톤의 ‘국가론’에도 나온다.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에 대한 플라톤의 답은 철학자이자 통치자를 의미하는 ‘철인왕(哲人王)’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플라톤 이래 지난 2500여년간 인류역사를 통틀어서 ‘철인왕’ 내지 ‘성군’이라고 할 만한 훌륭한 인물이 통치한 사례는 별로 없다. 그저 그렇고 그런 인물이나 무능하고 부패한 폭군이 통치한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다. 정치철학자였던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1945)’에서 바로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플라톤과 달리 칼 포퍼가 생각한 핵심적인 과제는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제아무리 무능하고 부패한 인물이 통치자가 되더라도 어찌할 수 없는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대선 때마다 최고의 인물을 뽑기보다 차선(次善) 내지 차악(次惡)을 뽑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이번에도 그렇다면 인물보다 공약이나 정책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조기 대선으로 인해 대선후보들이 제시하는 공약과 정책도 부실하고 검증할 시간은 더더욱 부족하다. 짧은 대선 기간이지만 무능하고 부패한 자들의 국정농단 사태를 방지하고, 시대착오적인 법·제도와 규제를 획기적으로 개혁하겠다는 의지라도 확고한 후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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