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만든 꽃 액자는 우리 며느리 줄 거야.”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보건소에서 열린 경증치매 환자들을 위한 ‘기억키움학교’ 교실에서 이점순(83·가명)씨는 한 시간가량 진행된 원예수업이 끝난 뒤 이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이 할머니는 “음악·미술수업을 들으면 치매를 예방할 수 있어 좋다더라”라며 “다른 곳에도 이런 교실이 더욱 많이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치매 국가책임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치매 노인을 위한 민간의 역할도 주목받고 있다. 치매 노인과 가족을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지원도 좋지만 이들 곁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시민사회의 역할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우리나라도 유엔이 정한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6월15일)’을 처음으로 받아들여 ‘노인학대 예방의 날’로 지정한 만큼 치매 노인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요구된다.
기억키움학교는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가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진행하는 경증치매 노인 지원프로그램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경증치매 노인을 대상으로 한다. 보건복지부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경증치매 노인은 전국 치매 노인 65만명의 절반을 웃도는 57.8%에 이르지만 등급 외로 분류돼 지원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기억키움학교는 이 같은 경증치매 노인들의 치매 진행 속도를 늦추고 부양가족의 안정된 삶을 지원하기 위해 비약물치료 프로그램(작업·미술·음악 등)과 부양가족 스트레스 해소 및 치매 관련 교육 등을 진행한다. 2009년에 시작해 현재 전국 21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까지 총 4만4,500여명의 경증치매 노인을 지원했다. 오명옥 용산구 치매지원센터 작업치료사는 “치매환자라고 해서 일상생활을 거의 하지 않고 집에만 있으면 인지능력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능력까지 퇴행한다”며 “음악·미술 등의 교육을 받으면서 인지하고 행동하는 것을 반복하면 치매 진행 완화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프로그램은 24시간 곁에서 치매 노인을 돌봐야 하는 가족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노인에 대한 학대 대부분이 가족에 의해 일어날 정도로 치매 노인을 둔 가족의 스트레스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학대로 판정받은 4,280건 가운데 가족에 의한 학대가 68%를 차지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관계자는 “반나절이라도 교육기관에 치매환자의 케어를 맡기면 가족들에게 자기만의 시간이 생겨 숨통이 트이게 된다”며 “치매와의 싸움은 장기전인 만큼 각자의 시간을 가지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민형·이두형기자 kmh204@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