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최형인 한양대 교수가 이끄는 앙상블 극단 ‘한양 레퍼토리’에서 연극배우로 데뷔한 이문식은 “연기는 결국 자기와의 고독한 싸움이다.“이다고 말했다. 배우로서 캐릭터의 새로운 영역을 찾아가는 희열이 그에겐 그 어떤 만족감보다 중요하다. 캐릭터의 정당성을 찾아가는 그의 열정은 그 누구도 못 말릴 정도. 그럼에도 그는 ”100점은 허상이고, 80점 정도는 받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배우 이문식 /사진제공=리틀빅픽쳐스“연극은 한 캐릭터를 놓고 3개월 정도는 아파하고 고민해요. TV나 영화에서는 여건 상 그렇게까지는 못해요. 배우 만족도만 놓고 보면 연극 할 때가 더 좋아요. 작품 선택 기준이요? 까다롭게 골라야죠. 개런티를 따지면 이상하겠지만 이 인물의 정당성을 따지는 것은 배우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해요. 어떤 감독님은 저의 이런 태도를 피곤해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배우가 그런 노력도 없이 새로운 인물을 창조할 수 있을까요?”
이문식은 1995년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 로 스크린 데뷔를 했다. 이후 영화 ‘달마야 놀자’, ‘라이터를 켜라’, ‘황산벌’, ‘마파도1 2’, ‘구타유발자들’, ‘마을금고 연쇄습격사건’, ‘플라이대디’, ‘강철중:공공의적’, ‘평양성’, ‘고래를 찾는 자전거’, ‘미쓰GO’ 에 출연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드라마 활약도 빼 놓을 수 없다. ‘원티드’, ‘대박’, ‘엄마’, ‘힐러’, ‘복면검사’, ‘유나의 거리’, ‘기황후’, ‘대풍수’, ‘자이언트’, ‘영광의 재인’, ‘선덕여왕’, ‘남자이야기’, ‘그분이 오신다’, ‘일지매’, ‘쩐의 전쟁’, ‘101번째 프러포즈’, ‘다모’등 다수 작품에 출연했다.
30대 후반에서야 ‘달마야 놀자’(2001)와 ‘황산벌’(2003) 등으로 ‘이문식’이란 이름을 대중에게 알렸다. 같은 코믹한 이미지로 소모되는 걸 원치 않았던 그는 늘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고자 했다.
영화 ‘플라이대디’(2006년)에서는 소심한 가장 역을 맡아 몸무게 15kg를 늘렸다 줄였고 SBS 드라마 ‘일지매’(2008년)에서는 생니를 빼며 연기투혼을 발휘했다. 실감 나는 연기를 위한 그만의 선택을 놓고 다양한 루머가 떠돌기도 했다. 이문식이 생니를 뺀 이유는 캐릭터의 차별성을 위해서였다. 2003년 출연한 ‘다모’에서 연기한 마축지 역과 ‘일지매’의 쇠돌 캐릭터가 비슷하게 보이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별짓을 다하네’라는 일부 반응에도 그는 “배우라면 당연히 자신의 배역에 충실해야 하지 않느냐?”고 답했다. 물론 어머니는 그 소식을 듣고 ‘썩을 놈의 새끼’라는 한마디를 하며 아들 걱정을 했다고 한다.
“1억 원을 받았네, 알고 보니 썩은 이였네. 여러 루머가 많았죠. 당시에 작가랑 연출이랑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원래 대본에는 6회 때 쇠돌이가 죽는 거였어요. 아들로 나온 이준기가 커버리면 아버지 쇠돌이는 크게 등장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대본상에도 쇠돌이의 희노애락이 별로 없었어요.
캐릭터 부분을 고민하다, 작가님이 쇠돌이가 고문을 당해 팔이 하나 없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 했는데, 전 좀 더 인물의 다른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마축지’ 이미지가 연상 돼선 안된다는 것도 고려사항이었어요. 그러다 나온 말이 ‘예를 들면 이빨이 하나 없다든지’ 였어요. 말이 씨가 낸다고 거기서 힌트가 생겼어요. ‘쇠돌이의 이빨이 하나 없다. 어때요?’라고 감독님에게 제안했더니 그러지 마시라고 했는데, 치과에 연락해서 알아보니 반영구적인 임플란트 가 있다고 하더군요. 뽑은 이를 다시 임플란트로 하면 되니 일상생활엔 큰 문제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당일에 뽑고 다음날 방송국으로 들어갔어요.”
이문식의 연기 투혼은 상식 그 이상이었다. 신작 영화 ‘중독 노래방’(감독 김상찬)으로 돌아온 그는 캐릭터 몰입을 위해 노래방에서 한 달간 자취 생활을 했다.
외딴 마을, 건물 지하에 위치한 ‘중독노래방’은 삶의 피해자이자 고통받는 이들이 최후의 도피처로 모여 있는 곳. 이문식이 분한 성욱은 ‘중독노래방’의 주인으로 절대로 밖을 나가지 않고 오직 노래방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야동만 보며 사는 ‘야동 중독자’이자 은둔형 외톨이이다. ‘미쓰GO’ 이후 6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그는 “저예산 영화의 한계가 있어 겁이 나기도 했지만, 저예산 영화라고 연기도 저예산은 아니잖아요” 라는 정신으로 온전히 ‘성욱’이란 인물에 몰두했다고 한다.
지하 노래방에서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 야동중독자(이문식), 게임중독자(배소은),머니중독자(김나미), 도벽중독자(방준호) 이렇게 네 명의 인물은 서로의 상처를 들춰내는 대신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받아들인다. 사회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 상처를 치유하기 어려운 사회 구조, 진정한 가족의 의미 등 현대 사회가 직면한 문제 의식을 판타지 장르와 독특한 문법으로 녹여냈다.
삶의 희망을 놔버린 인물 ‘성욱’의 내면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한 이문식은 “‘중독 노래방’은 삶에 대해 정직하게 다가간 미스터리 판타지영화이다. 새로운 재미가 있을 것이다”고 평했다.
베테랑 배우 이문식은 유명세를 원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비주얼이 썩 좋지 않은(?) 저 같은 배우에게도 연기적으로 기회가 많이 온다면 고무적이지 않겠냐”는 의견을 전했다.
“천만 영화로 불리는 ‘7번방의 선물’(2013)의 류승룡, 첫 원톱 주연을 맡아 690만 관객을 동원한 ‘럭키’(2016)의 유해진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같은 영화인으로서 좋습니다. 영화의 다양성을 넓혀주고 있잖아요. 배우로서 조연이든 주연이든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하다 보면 그런 날이 오겠죠. 전 흥행 배우는 아닙니다. 그나마 ‘달마야 놀자’(2001)로 400만을 찍었는데, 지금으로 치면 천만 영화일 수 있겠네요. ‘중독노래방’ 이후엔 영화 ‘게이트’로 관객을 만날 것 같습니다. ”
한편, 15일 개봉한 ‘중독노래방’은 이문식, 배소은, 김나미, 방준호 등이 가세했고 ‘복면 달호’를 연출한 김상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