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5일 “북한의 엄중한 도발에 성명으로만 대응할 상황이 아니다. 미사일 연합 대응 태세를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함에 따라 정부 대북 정책의 무게추가 대화에서 압박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성명으로만 대응할 상황이 아니라고 진단한 것은 말로만 규탄할 게 아니라 북한을 실제로 아프게 할 수 있는 제재수단을 강구해 독자 시행하겠다는 뜻이어서 정부의 향후 조치에 관심이 집중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6·15 남북공동선언 17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추가 도발을 중단한다면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 북한의 호응을 촉구한다”며 남북 대화를 재개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이 전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을 감행하면서 대화의 전제조건이 깨져버렸다. 특히 ICBM 시험발사는 6차 핵실험과 함께 미국이 ‘레드라인(금지선)’으로 비유한 중대 도발이다. 이번에 북한이 2개의 레드라인 중 하나를 넘어선 이상 대화의 전제조건이 다시 충족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문 대통령이 전날 한미 미사일훈련을 미국에 먼저 제안한 것도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북한이 도발을 멈추면 대화에 나서겠다는 방침에 한미 정상이 동의했지만 북한이 계속 도발할 경우에는 이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뜻을 문 대통령이 분명히 표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문 대통령의 미사일 무력시위 제안에 “북한의 도발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높이 평가하고 공감한다”며 찬성함에 따라 한국군 현무-2와 미군 에이태킴스(ATACMS)가 동원된 연합 미사일 사격훈련이 이날 즉각 이뤄졌다.
한미 정상 사이에 이 같은 기류가 형성됨에 따라 문 대통령은 북한 제재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행동의 보조를 맞출 가능성이 크다. 그간 정부는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반대에 대응하는 데 급급해 북한 제어를 위한 중국의 역할을 강력 주문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당장 6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이뤄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첫 만남에서 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요청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한국은 중국이 대북 원유공급 중단조치를 취하도록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은 어지간한 압박에는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향한 질주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북한은 미국에 대한 핵 공격 능력을 갖추는 최종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어떻게든 경량화된 핵탄두와 성능이 검증된 ICBM을 손에 넣고 국제사회와 대등하게 겨루고자 할 게 분명하다. 미국까지 날아가는 핵무기는 협상의 판도를 일거에 바꿀 ‘게임 체인저’이기 때문이다. 외교·안보 분야의 한 고위당국자는 사석에서 “파키스탄은 핵실험 6회를 통해 핵무기를 완성했는데 북한은 이미 5회를 했다. ICBM도 추진기술은 거의 완성했고 제어기술만 다듬으면 되는 수준까지 발전시켰다”며 북한이 골인 지점 직전까지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미국도 북한에 대한 추가 조치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우선은 중국을 향해 역할을 촉구하는 한편 북한과 거래하는 기업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 실행을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략무기를 동원한 무력시위를 통해 북한 정권에 공포를 주는 카드도 다시 꺼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