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과 러시아·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 결정을 내리면서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이 이란과의 경제협력에 속도를 내며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지난해 1월 서방의 대(對)이란 제재가 풀린 후 이란과 경제 분야에서 밀월 관계를 형성해온 EU가 트럼프 행정부와 이란 간 불협화음을 시장 확대의 기회로 삼고 있는 셈이다.
뉴욕타임스(NYT)는 7일(현지시간) 프랑스 자동차 회사 르노가 이란 국영투자사인 이란산업발전·개발공사(IDRO) 등과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로 하고 최종 계약을 맺었다고 전했다. 투자금액은 7억7,700만달러(약 8,800억원)로 르노는 합작사의 지분 60%를 차지하게 된다. 이 합작사는 내년부터 이란에서 연간 15만대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더스터와 소형 세단 심벌을 생산할 예정이다. 오는 2019년부터는 추가 투자를 통해 생산 대수를 연 30만대로 늘릴 예정이다.
이란과 EU는 이란에 대한 제재 해제 당시부터 눈에 띄는 경제연대 강화 행보를 이어왔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제재 해제 후 첫 해외순방지로 유럽을 택하고 프랑스에서 30조원에 달하는 에어버스 항공기 118대를 구매하는 메가딜을 체결하며 통 큰 선물을 안긴 바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대이란 제재에 나선 이후 이란과 EU 간 밀월 행보에는 한층 속도가 붙었다. 지난달에는 프랑스 최대 에너지 기업 토탈이 약 11억달러를 투자해 이란 남부 걸프해역의 ‘사우스파르스 가스전’ 제11공구 개발 사업의 본계약에 서명했다. 토탈의 투자 계약은 대이란 제재 해제 이후 서방 에너지 기업의 첫 투자사례에 해당한다. 또 맥도날드와 KFC 등 미국계 프랜차이즈 브랜드에 영업허가를 내주지 않았던 이란 당국이 지난달 1일 스페인계 프랜차이즈 업계 ‘텔레피자’ 개점을 허가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외신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에 ‘강경 대응’ 카드만 내미는 상황에서 자원부국인 이란의 개발수요와 경제부흥을 꾀하는 EU 국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양측 간 경협이 한층 공고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기간 버락 오바마 전임 정부 때 맺은 이란과의 핵 협정을 “매우 나쁜 협상”이라고 비판해왔으며 3일에는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를 단행하는 패키지법에 서명했다.
한편 미국으로부터 대통령 연임 선물로 제재안을 받아든 로하니 대통령은 임기 첫날인 5일 일성으로 “핵 협정을 지키지 않는 국가는 바로 미국”이라며 “신뢰가 부족한 국가”라고 맹비난했다. EU 역시 미국의 패키지 제재가 이란과 협력한 EU 기업에 피해를 줄 수 있다며 트럼프 정부의 대이란 정책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앞서 장클로드 융커 EU 위원장은 “미국이 최근 서명한 신규 제재가 EU 기업에 손해를 끼치지 않도록 적절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설사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우리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홍용기자 prodig
티에리 볼로레(왼쪽) 르노 경쟁담당 부회장과 만수르 모아자미(가운데) 이란산업발전·개발공사(IDRO) 회장, 코로쉬 모쉐드 솔룩 이란 수입차 협회장이 7일(현지시간)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합작회사 설립과 관련한 계약을 맺고 악수를 하고 있다. /테헤란=AFP연합뉴스y@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