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소리없는 폭탄 'EMP'

0616A39 만파


1962년 7월9일 밤11시, 하와이 서남쪽 존스턴섬 하늘에서 거대한 섬광이 일었다. 로켓에 실린 TNT 140만톤의 위력을 지닌 ‘W39’ 핵탄두가 400㎞ 상공에서 폭발한 것. 그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1,400㎞나 떨어진 하와이에서 300여개의 가로등이 꺼지고 통신망이 30초간 멈춰 섰다. 게다가 800㎞ 밖에 있던 관측장비가 파괴되는가 하면 미군 저궤도를 돌던 미국의 인공위성 7기가 작동불능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핵폭발 당시 발생했던 거대한 전자기파(EMP·ElectroMagnetic Pulse) 때문이었다. 작전명 ‘불가사리 프라임(starfish Prime)’으로 명명된 이 실험으로 그동안 이론으로만 알려졌던 EMP가 현실화한 것이다.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한순간에 적을 무력화할 수 있는 ‘소리 없는 폭탄’의 등장이다.


EMP는 1925년 미국 물리학자 아서 콤프턴이 발견했다. 고에너지의 빛을 원자에 쏘면 전자를 방출해 강력한 전자기펄스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빛이 입자라는 것을 증명한 당시 과학계로서는 혁신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이를 단순히 과학으로만 놓아두지 않았다. 100㏏짜리 폭탄이 고도 80㎞에서 폭발할 경우 반경 1,000㎞의 전자통신 장비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사실은 무기에 대한 욕구를 키웠다. 2003년 이라크전에서 미국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상대 통신과 방공 시스템을 무력화한 EMP탄 덕분이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역효과도 크다. 9·11테러 이후 테러집단의 핵폭탄 탈취 우려가 높아지면서 미국은 2001년부터 ‘전자기파청문회(EMP Commission)’를 개최하고 있다. 무기에 대한 욕심이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관련기사



북한이 6차 핵실험 이후 연일 EMP 공격 위협에 나서고 있다. 노동신문이 3일 “전략적 목적에 따라 광대한 지역에 대한 초강력 EMP 공격을 가할 수 있다”고 한 데 이어 4일에도 “높은 고도에서 폭발하면 통신시설과 전력 계통을 파괴한다”고 협박했다. 그칠 줄 모르는 북한의 핵 집착이다. 그 기술을 한반도 평화와 미래세대의 풍요한 삶을 위해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은 어찌 안 하는지 모르겠다. /송영규 논설위원

송영규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