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승줄에 묶인 내 몸의 우스꽝스러움이여/한국에 태어난 죄로 겪어야 하는 이 희극이여’-마광수 시선 ‘사라의 법정’ 중에서
‘즐거운 사라’ 등의 작품으로 한국 사회의 엄숙주의를 조롱하며 외설성을 문학계 담론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였던 소설가 마광수씨가 5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66세. 이날 낮1시51분께 마 전 교수가 자택인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한 아파트에서 숨져 있는 것을 같은 아파트 다른 집에 사는 가족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그의 자택에서는 유산을 자신의 시신을 발견한 가족에게 넘긴다는 내용과 시신 처리를 그 가족에게 맡긴다는 내용을 담은 유언장이 발견됐다. A4용지 한 장짜리 유언장은 지난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전했다.
마 전 교수는 지난달 연세대에서 정년퇴직한 후 지인들에게 “우울하다”고 말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지난 1992년 발표한 소설 ‘즐거운 사라’가 음란물 제작이라는 혐의를 받아 강의 도중 체포됐다. 구속 이후 법정 싸움을 ‘한국에 태어난 죄’로 표현하며 억울함과 괴로움을 토로했다.
마 교수는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이후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1984년부터 모교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박사 학위를 받기 전인 25세부터 대학 강의를 시작해 28세에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돼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서른넷의 젊은 나이에 모교 교수에 임용됐다.
그는 소설 ‘즐거운 사라’가 ‘음란물’ 논란을 빚고 유명해지기 전부터 박사학위 논문으로 ‘시인 윤동주 연구’를 발표하면서 학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의 윤동주 연구는 지금까지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서 윤동주 해설의 길잡이가 되기도 했다.
그보다 전인 1977년에는 시인 박두진씨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 부문으로 등단해 시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내가 죽은 뒤에는’이라는 시에서 “내가 ‘윤동주 연구’로 박사가 됐지만 윤동주처럼 훌륭한 시인으로 기억되긴 어렵겠고 아예 잊혀져버리고 말든지 아니면 조롱 섞인 비아냥 받으며 변태, 색마, 미친 말 등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칭송을 받든 욕을 얻어먹든 죽어 없어진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라고 죽음 이후의 평가를 자조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만큼 마광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1992년 ‘즐거운 사라’ 출간이다. 긴 손톱에 새빨간 매니큐어를 바르고 미니스커트 아래로 하이힐을 신은 여대생 ‘사라’가 외설스럽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그는 그해 10월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으로 구속됐다. 구속 사유는 음란물 제작 및 배포 혐의였다. 두 달간 수감생활을 한 뒤 3년 뒤인 1995년 최종심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이로 인해 연세대에서 해직되고 1998년 복직됐으나 그의 복직은 논란이 됐고 2000년에는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등 파란만장한 시기를 보냈다.
올 1월 펴낸 그의 총결산 시집 ‘마광수 시선’을 통해 그는 “나답게 살기 위해 성문학을 시도했고 그래서 많이 얻어맞아 다쳤다”며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여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전하기도 했다.
/정혜진·나윤석기자 made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