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기업 현실 외면한 사법부

이재용 사회부 차장



최근 국내 주요 기업들의 눈과 귀는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쏠렸다.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사건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공여 사건에 대한 1심 선고가 잇달아 내려졌기 때문이다.

두 기업 모두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데다 이번 판결이 회사 경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경영계는 숨을 죽이고 재판부의 판단을 지켜봤다. 재판부는 기아차 통상임금 사건에서 노조의 손을 들어주며 회사가 4,223억원을 추가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이 부회장에게는 뇌물공여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 같은 판결에 경영계는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재판부가 기업 경영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은 재판부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적용하지 않은 판단 근거가 논란이 됐다. 재판부는 “기아차가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지속적으로 상당한 당기순이익을 거둬 경영 상태가 나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추가 부담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과거 자동차 시장 호황기의 좋았던 실적을 토대로 현시점 이후 발생할 추가 지급액이 문제없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과거보다는 미래를 보고 경영전략을 짠다. 게다가 우리 기업들의 미래는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후발 업체의 맹추격,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및 미국의 통상압력 등으로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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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가 기아차 노사 관계에 대해 내린 판단은 경영계를 더욱 아연실색하게 했다. 재판부는 “기아차 노사가 자율적이고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왔고 근로자들이 회사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아차 노조가 지난 1991년 이후 올해까지 2010년과 2011년을 제외하고 해마다 파업을 강행한 현실과 심각한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이 부회장에 대한 실형 판결에 대해서도 경영계는 각종 인허가권과 규제·세무조사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정부 앞에서 ‘을(乙)’일 수밖에 없는 기업의 입장을 재판부가 충분히 감안하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물론 재판부가 제한된 증거 자료와 정보에서 기업들이 처한 복잡한 상황을 속속들이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통상임금 적용과 기업 출연금의 뇌물 인정 등 경제계에 미칠 파급효과가 큰 사건이라면 적어도 기업들이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의 판결들을 보면 재판부가 특정한 결론을 위해 기업 현실을 애써 외면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이제 사법부가 과거처럼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대기업에 관대한 판결을 내리던 관행은 사라졌다고 본다. 하지만 반대로 대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재판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일 또한 없어야 한다. 이들 사건의 2심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jylee@sedaily.com

이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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