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직업의 종말]직업의 시대는 가고...창업의 시대 온다

■테일러 피어슨 지음, 부키 펴냄

고학력자 늘며 좋은 일자리 줄었지만

기술발전으로 창업 문턱은 낮아져

자신만의 시스템 직접 고안·발전

'창업가 정신' 발휘해야 성공 가능



매년 국내 고교 졸업생 10명 중 7명이 대학에 진학한다. 한때 대학진학률이 80%에 육박했던 점을 상기하면 다소 완화됐지만 여전히 대다수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대학은 직업을 얻고 부를 얻는 필수코스다. 대학에 입학한다고 끝이 아니다. 각종 어학시험과 자격증 준비에 매달리고, 어학연수가 필수코스가 됐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한 투자라는데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청년 실업률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지난달에는 15살에서 29살 청년층의 실업률이 9.4%를 기록, 8월달 수치로는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8월 이후 가장 높았다.

이는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다. 2000년에서 2010년까지 전 세계 대학졸업자 수는 9,000만 명에서 1억3,000만 명으로 불어났다. 이들 상당수는 버는 돈으로 학자금 대출을 갚기 급급하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는 갈수록 줄고 있다. 고급 인력이 급증하면서 일자리 시장은 고용주 중심의 시장이 됐고 단순 업무마저도 고학력 학위 소지자들이 도맡고 있다. 여기에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직업 대부분이 20년 뒤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을 더하면 직업을 갖기 위한 우리의 투자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앞으로 학위의 가치가 얼마나 더 떨어질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런 가운데 비즈니스 컨설턴트인 테일러 피어슨은 ‘직업의 종말’에서 직업 대신 창업을 꿈꾸라고 조언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직업은 성공의 지렛대였다. 정해진 규칙을 배우고 이를 잘 수행하기만 해도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러나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세계화의 추세가 부를 쌓는 지렛대 자체를 바꿔놓았다. 2020년이 되면 아르헨티나, 브라질,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출생한 25~34세 고학력자수가 OECD 회원국 고학력자 수를 40% 이상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통신기술의 발달이 더해지면서 그간 저임금 시장에만 머물었던 고학력 인구가 세계 인력 시장에 포섭되고 모두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전 세계 70억명과 경쟁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이처럼 구직시장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지만 창업시장의 문턱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업가들은 가격경쟁력과 기술경쟁력을 갖춘 전 세계 하도급 업체와 업무 계약을 맺고 고용하면서 창업비용을 낮추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전 세계에 알리고 유통하는 일은 전보다 쉬워졌다. 실용적인 여행 가방을 개발한 한 창업가들은 기술력이 좋은 제3 세계 가방 공장을 찾아내 무료로 시제품을 제작했고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를 이용해 상품을 사전 홍보하고 투자금도 확보했다.

관련기사



생산도구과 유통의 대중화, 새롭게 창출되는 시장은 비즈니스에 성공한 기업 상당수가 20%의 머리가 아닌 80%의 꼬리 부분에 기초해 성공했다는 롱테일 법칙의 가능성을 높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머리보다 꼬리가 더 두툼해졌기 때문에, 꼬리에 더 많은 가능성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선원들만 들을 수 있는 음반을 출시하는 회사가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건 전 세계 선원들에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적 한계가 뚜렷했던 과거에는 꿈도 못 꿀 일이다.

노동시장의 변화도 크다. IBM 컨설턴트인 데이브 스노든의 커네빈 프레임워크에 따르면 노동시장은 복잡영역, 난해영역, 혼돈영역, 단순영역으로 구분된다. 단순영역은 매뉴얼을 따르면 익힐 수 없는 업무, 난해영역이 분석과 조사를 통해 배우는 업무라면 복잡영역은 창업가가 스스로 인과관계를 찾아야 하는 업무, 혼돈영역은 인과관계 조차 알 수 없는 불확실의 세계다. 단순영역과 난해영역이 주류였던 시기에는 평범한 교사가 보통의 근로자를 키워내는 교육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지식 기반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창의적이고 창발적인 문제 해결이 우선시 되는 시대가 됐다.

지금의 성장 둔화가 세계적 경기침체가 아닌 두 시대의 경제적 전환기일뿐이라는 저자의 진단은 흥미롭다. 지금의 경제 문제는 평범의 왕국이 사라지고 극단의 왕국으로 들어서면서 기존의 시스템을 운용하던 법칙들이 통용되지 않은 결과라는 주장이다. 국가가 직업을 의무로 생각하고 국민을 훈련하는 것, 일자리를 생산성 측정 지표로 보는 것은 기존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한다. 그러나 세상을 움직이는 사회적 각본이 바뀌었다. 저자가 이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으로 ‘창업가 정신’을 꼽는 이유다.

그렇다고 저자가 무턱대고 모두가 자기 사업을 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직업을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따라 일하는 것’ 창업을 ‘시스템을 직접 고안하고 창출·연결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경영 업무를 수행하는 최고경영자는 직업인이며, 조직에 소속돼 있지만 자기만의 규칙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직장인은 창업인인 셈이다. 저자는 창업인이 되기 위해 두 가지 길을 제시한다. 하나는 직장에 다니면서 주말마다 관심 분야의 프리랜서 일을 하고 단계별로 성취하라는 조언이다. 어느 정도 자신감과 노하우가 생기면 본격적으로 비즈니스에 모든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면 된다. 두 번째 방법은 ‘수습생 방식’이다. 관심분야의 회사에 입사해 인맥을 쌓고 비즈니스 생태계의 복잡성을 미리 경험한다면 돈을 벌면서도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이 책은 직업의 어두운 미래를 예감하면서도 다른 길을 찾아 나서지 못하는 이들을 설득하기에 충분하다. 메뉴판을 들었는데 대부분의 재료가 떨어져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다. 이제 내가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단순명쾌하다. 1만5,000원

서은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