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적폐청산TF 등 前정부만 겨냥..."과거가 미래 잡는 형국"

[기업이 힘들어하는 진짜 이유 4가지]

②과거만 향하는 정부

中 계약제 활성화로 투자 느는데

韓은 '노동유연성 약화' 역주행

원전·해외자원개발도 무관심에

애써 쌓아올린 성과 물거품 우려



부산 녹산산업단지에서 도금사업을 하는 C대표는 올해 대대적으로 자동화 설비를 들여놓을 계획이다. 올해 고용계획도 취소했고 주말 잔업까지 없애며 영업이익률을 따져보고 있다. 최저임금이 16.4%나 오른 데 이어 노동 경직성 해소를 위해 도입된 양대 지침이 백지화됐다는 소식을 듣고 결정한 일들이다. 근로자들은 평일보다 50% 임금을 더 받는 주말근무가 없어져 불만이 많다.

C대표는 “4대 보험, 상여금, 퇴직금, 근로자 숙소비용을 모두 따지면 시급은 1만원이 훌쩍 넘어 더 이상 고용은 어렵다고 판단해 자동화 설비를 알아보고 있다”며 “일부 외국인 근로자들의 경우 임금이 안 맞으면 그 다음날 출근도 안 하는데 앞으로 일반해고도 못하게 만들어놓았으니 근로자 관리가 더 어려워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조직·사업이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정책에서는 지난 25일 노동개혁 양대 지침을 전격 폐기하기로 결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월 고용노동부는 현저한 저성과자를 해고할 수 있게 하는 ‘공정인사제 도입’과 ‘취업규칙 변경’을 골자로 한 정부의 노동개혁 양대 지침을 전격 발표했다. 정부는 당시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하는 상황을 감내하면서까지 양대 지침을 밀어붙였다. 사실 양대 지침 도입의 핵심은 저성과자 퇴출이 아니라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으로 인사관리가 전환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있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 근로자의 이의 제기, 해고회피 노력이 없으면 해고할 수 없게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풀려야 사용자는 물론 근로자들도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으며 몸값을 높여 받을 기회가 생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양대 지침을 추진했던 원인을 분석하지 않은 채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이라는 긍정적 결과만 보고 하루아침에 1년8개월 전으로 돌아갔다.

달라진 환경은 고려되지 않은 채 과거 진보정권의 색채를 살리려다 보니 부작용이 예상된다. 정연앙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제품과 서비스의 수명이 굉장히 짧아져 재빠르게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야 하는데 고용 유연성이 없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중국도 계약제 노동시장이 활성화되며 외국인 투자가 늘고 있는데 우리 정부만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책만 과거로 향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조직도 방향을 과거로 잡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다. 실제로 청와대는 7월 법무부를 제외한 16개 부처와 국가보훈처 등 19개 정부기관에 ‘적폐청산을 위한 부처별 TF 구성 현황과 향후 운영계획’을 회신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과거 잘못한 일을 바로잡고 미래로 나아간다’는 데는 아무도 이견이 없지만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답답함이 느껴진다. 실제로 국방부는 최근 북한의 수차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에도 적폐청산과 개혁에 집중했다. 이외에 국정원 ‘적폐청산TF’, 교육부 ‘역사교과서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등 현안보다 대통령 공약사항을 추진하는 데 각 부처가 온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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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부가 추진했던 사업들에 대한 무관심도 문제다. 그동안 쌓아온 성과 역시 한 번에 무너져내릴 수 있고 다시 쌓아올리는 데 꽤 시간이 걸리는 사업들도 많아 업계의 우려가 크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원전정책을 폐기하고 탈원전에 몰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원전 건설을 주도했던 산업부는 대규모 해외 원전 수주건을 경쟁국에 내주는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탈원전’ 홍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건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전사업과 해외자원 개발 등 전 정부에서 추진했던 사업에 대해 무관심하다”며 “과거에 실패했다고 해서 덮어놓고 백안시하다 보면 결국 다시 과거에서 출발하게 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산업계에서는 소비자 보호에 발이 묶여 산업 발전을 더디게 하는 데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낸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정부 정책에 코드를 맞추기 위해 소비자 보호 경쟁을 벌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증권 업계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 보호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코앞에 닥친 미래 과제를 미뤄두고 일상적 업무에 가까운 소비자 보호에 올인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역시 급속한 과거 회귀는 탈이 날 수 있다고 진단한다. 김성현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지난 정권과 경제정책 방향이 180도로 달라지다 보니 불확실성이 커져 대응이 어려운 것”이라며 “예전에는 됐는데 지금은 안 되는 게 급속히 늘어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세종=강광우기자 이혜진·빈난새기자 pressk@sedaily.com

강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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