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위기의 금감원, 탈출구는 없나] "금감원, 앞뒤 안보고 징계 거리만 찾는데...기업여신 하고 싶겠나"

<중>실적압박에 예방 감독 뒷전

기업투자 마중물 역할 해야할 은행들 눈치보기 급급

업무영역 기능별로 정비...검사원 전문성 강화 필요

제대로 된 보상 위한 '인사 인센티브' 도입도 병행을



국내 A시중은행은 지난해 말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경영유의’ 조치를 받았다. 주택담보대출 등 여신 사후관리가 미흡하고 자본 적정성 관리도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기업여신이 문제가 됐다. A은행은 지난 2013년 공장 신축을 위해 은행을 찾은 B기업에 대해 매출이 급증할 것으로 보고 360억원 규모의 시설자금대출을 해줬는데 B기업이 3년 연속 손실을 내면서 결과적으로 ‘부실’ 판단을 받았다.


여신심사 적정성 등 금융회사의 리스크 요인을 찾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은 금감원의 고유 업무다. 그러나 당연할 것 같은 금감원의 조치에 대해 금융회사들에서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징계를 받아서가 아니다. 두루뭉술한 규정을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꼬투리를 잡기 위한 것처럼 비쳐져서다.

시중은행의 한 기업여신 담당자는 26일 “금감원에서 일단 검사를 나오면 어떻게든 한 건 찾아내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무리한 징계 조치를 내릴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예를 들어 제조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에 대출해줬다가 대기업이 납품업체를 바꿔 매출이 떨어지고 부실이 진행되면 “왜 대기업의 납품업체 교체를 미리 예측하지 못하고 부실기업에 대출해줬느냐”는 식으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제조기업의 부품업체 선정은 경영상 중대기밀로 구매팀 임원이나 최고경영자(CEO)급이 아니면 그 과정을 소상히 알기 어려운데도 현실을 무시하고 트집만 잡는 셈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부실이 있더라도 합리적으로 대출 과정을 처리했고 고의나 중과실이 없다면 면책을 하는 게 상식인데 현재 금감원에서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다른 여신 담당자는 “금감원 검사를 한번 받고 나면 다시는 여신 업무를 하기 싫을 정도로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고 말했다. “앞뒤 보지 않고 징계거리만 찾는 구태가 이어지다 보니 기업여신을 하고 싶겠느냐”는 한탄이 금융권에서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금감원 기업여신 검사에서 지적을 받으면 최악의 경우 담당 지점장이 일선에서 후선으로 물러나게 되는 수도 있어 기업대출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심사하는 배경이 된다는 게 금융권의 설명이다. 이렇다 보니 기업 투자와 고용의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할 은행이 금감원의 눈치를 보느라 대출 수도꼭지를 조이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하소연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피감기관으로서는 당연히 억울한 측면이 있겠지만, 우리로서도 억울한 측면이 있다”며 “일부 사례가 과장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민간 출신인 최흥식 금감원장은 최근 임원회의 때마다 “금감원이 금융회사를 검사·제재하면서 위규행위 적발에 중점을 둬 금융회사 및 임직원의 사정을 경청하지 않고 있다”며 금감원 직원들의 ‘태도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20여년간 갑(甲)의 위치에 익숙해진 금감원이 하루아침에 검사 관행을 바꿀 것으로 기대하는 금융회사는 많지 않다.


금감원 검사원의 전문성 부족도 금융회사 검사 때마다 도마 위에 오르는 불만 항목이다. 시중은행의 또 다른 관계자는 “한번 검사를 받아보면 ‘팀장급 이상은 디테일이 많이 떨어져 답답하고 회계사 출신 말단 조사역들과 일하는 게 차라리 편하다’고 말하는 직원들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현재 금감원 임직원 1,907명 중 관리직에 해당하는 1~3급의 비중은 45.2%에 이른다. 직원 두 명 중 한 명이 관리직인 기형적인 구조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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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전문성 부족 문제를 인사와 조직 쇄신으로 풀어야 한다고 처방한다. 현재 은행·보험·증권 등 권역별로 나뉜 업무영역을 기능별로 다시 정비하고 검사국별로 전담 금융기관을 지정해 검사 업무에서 종합적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시도가 완전히 새로운 해결책은 아니다. 금감원은 2005년에도 ‘조직 및 인사제도 쇄신방안’을 내놓으면서 직원별로 전담 금융기관을 지정하는 기관전담(RM·Relationship Manager)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검사지원국을 만들어 검사국의 전문성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업권 이기주의에 흐지부지돼버렸다.

전직 금감원 고위임원은 “2005년에 만들어졌던 쇄신안도 취지는 좋았지만 금감원 내 고질적인 ‘업권 이기주의’ 때문에 검사지원국 직원이 은행권 검사에만 동원되고 인사에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커 결국 뿌리 내리지 못했다”며 “최 원장이 조직 재편과 더불어 인사 측면에서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까지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의 쇄신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일회성 구호가 아니라 뿌리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은 최근 조직 쇄신을 위해 외부 컨설팅을 받기로 했지만 결과를 어떻게 접목할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현재 금감원 인사제도는 전문가들이 순환보직 하지 않을 경우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며 “전문가가 동일 업무에 종사해도 승급할 수 있는 별도의 직급체계를 만들어주는 한편 외부 전문가들을 영입할 수 있도록 급여체계를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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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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