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건 되고 저건 왜 안되나" 비정규직 사용사유 법적분쟁 불가피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

사실상 민간기업에 정규직 고용 강제하는셈

300인 이상 기업에 고용형태 공시제도 강화

10년전에 이미 폐기...입법 가능성 높지 않아

1915A03 비정규직 기간제한과 사용사유제한 비교




1915A03 비정규직 근로자 수 및 비중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일자리위원회 제3차 회의’가 열린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로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삶을 모티브로 제작한 폰 케이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일자리위원회 제3차 회의’가 열린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로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삶을 모티브로 제작한 폰 케이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18일 발표한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에 담긴 비정규직 남용 방지 정책의 핵심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앞으로 기업이 비정규직 근로자를 쓰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근로자가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를 써 결원이 발생했을 때나 계절적 요인으로 급증하는 업무를 담당할 인력이 필요할 때 등 비정규직 사용 가능 사유를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으로 못 박아 그 밖의 이유로는 아예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현행 기간제법은 사유와 무관하게 2년 내에서는 비정규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 휴직·파견 등으로 결원이 발생해 당해 근로자가 복귀할 때까지 그 업무를 대신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에는 2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현재의 ‘사용기간 제한 방식’과 비교해볼 때 정부가 법 개정을 통해 추진하겠다고 밝힌 ‘사용사유 제한 방식’은 사실상 민간기업에 정규직 고용을 강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생명·안전과 직접 관련된 업무·업종에는 아예 원천적으로 기간제·파견 근로자 사용을 금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철도·항공 등 공공안전과 직결된 분야는 법률에 명시하고 그 외 분야는 시행령에 위임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기업이 정규직을 고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고용형태 공시제와 상장기업이 대상인 기업 공시제도 강화한다. 먼저 현재 소속 외 근로자의 고용 현황만 공시하도록 한 고용형태 공시제를 손봐 앞으로는 업무내용도 공개하도록 하도록 할 방침이다. 기업 공시제의 공개정보는 현재 기간제·단시간 근로자 고용 현황에서 소속 외 근로자 고용 현황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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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이미 10여년 전에 도입하려다 실패한 사용사유 제한 카드를 다시금 꺼내 든 것은 기업이 회사의 이익을 위해 무분별하게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있다는 지적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라며 “하나는 사업이 잘 안 될 때 쉽게 해고할 수 있어서이고 나머지 하나는 인건비를 줄여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부위원장의 언급을 뒤집어보면 우리나라 고용시장이 그만큼 경직돼 있다는 얘기도 된다.

비정규직의 사용사유를 과연 어떻게 정할지도 논란거리다. 특정 이유를 사용사유로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 따라 업종별로 명암이 갈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계절적 요인에 따른 업무량 증가를 비정규직 사용사유로 적시하면 명절 무렵 일시적으로 업무량이 폭증하는 택배업 등은 한숨을 돌릴 수 있다. 하지만 일정한 주기 없이 프로젝트를 수주할 때마다 업무량이 급증하는 광고·마케팅업 등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이건 되고, 저건 왜 안 되느냐는 형평성 논란이 일 수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사용사유의 해석을 놓고 법적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크다.

전문가들은 사용사유 제한 제도가 실제 입법화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지 않다. 최영기 한림대 교수는 “이미 지난 2004~2006년 비정규직법을 제정할 때부터 비정규직 사용 규제를 기간으로 할 것이냐, 사유로 할 것이냐의 논란은 컸었다”며 “당시 전문가들이 1년 이상 논의해서 결론을 낸 것이 사유는 너무 강하니 기간으로 하자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10여년 이상 기간 제한으로 해온 제도를 급작스럽게 사유 제한으로 바꾸면 노동시장에 큰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며 “국회의 입법 절차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날 정부가 발표한 로드맵에는 비정규직 차별 해소, 사내 하도급 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 방안도 담겼다. 정부는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합리적 차별사유 인정 범위를 축소하고 노력·성과·보상 간 연계성을 강화해 직무와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보상받는 공정임금 체계를 확립할 계획이다. 아울러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법적 보호도 강화한다. /세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임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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