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어머니의 '약손'

신준식 자생의료재단 명예이사장

신준식 자생의료재단 명예이사장


“엄마 손은 약손.” 누구든 어릴 적 속이 더부룩할 때나 체기가 있을 때 어머니가 배를 문질러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주문처럼 ‘엄마 손은 약손’을 읊조리며 배꼽 주변을 둥글게 문질러주면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그라들었다. 혹자는 위장의 순환을 돕는 경락 마사지 효과가 있다고 말하지만 마법의 비밀은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노숙인 복지와 자립 지원을 위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안정된 주거공간 없이 길거리·공원·역 등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이 전국에 1만1,000여명(지난해 10월 기준)이나 됐다. 이들이 거리 생활을 하는 이유는 질병, 이혼, 실직, 알코올 중독 등이었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면 누군가 도움의 손을 내밀면 ‘약손’으로 덥석 잡아주던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오니 남루한 행색의 노숙인 아저씨가 내 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몸이 불편한 노숙인을 본 어머니가 추워지는 날씨에 거리 생활이 힘들까 봐 집으로 모셔온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 놀라고 그의 얼굴과 몸 상태에 또 한 번 놀랐다. 코를 찌르는 악취에다 구안와사(입과 눈 주변 근육이 마비돼 한쪽으로 비뚤어지는 질환)로 일그러진 얼굴, 비틀린 팔에 제대로 걷지 못하는 노숙인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낯선 이와 같이 지내기 싫다고 말씀드렸지만 되돌아온 것은 사람을 대하는 내 태도에 대한 꾸짖음뿐이었다. 그렇게 불편한 동거가 시작됐다. 의사인 아버지는 보약을 먹이면서 노숙인을 치료해줬고 어머니는 삼시 세 끼 따로 밥상을 차려 노숙인을 먹이고 씻기고 깨끗한 옷을 입히며 돌봤다. 그렇게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어느새 얼굴이 말끔하게 펴지고 뒤틀린 팔다리도 정상에 가깝게 돌아온 노숙인 아저씨는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노숙인 아저씨를 치료해준 것은 몸이 불편한 이를 따뜻하게 어루만져준 어머니의 약손이 아니었나 싶다. 어머니의 약손은 평생 계속됐다. 많은 노숙인과 몸이 불편한 할머니들을 돌보고 결핵 환자촌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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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약손과 노숙자 아저씨의 기억을 다시 끄집어낸 것은 해외 의료봉사를 갔을 때였다. 몽골에서 만난 한 어린 환자는 인지력 장애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무릎을 제대로 구부리지 못해 어색한 팔자걸음을 걸었다. 오랫동안 씻지 못해서인지 몸에서는 악취가 풍겼다. 나는 정성을 다해 치료해줬고 귀국할 때 몸 상태가 많이 좋아진 아이의 엄마가 큰절을 하며 감사를 표할 때 어머니의 약손이 생각나 눈물이 핑 돌았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각박해졌다고 해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이들이 ‘민들레 홀씨’처럼 많아졌으면 좋겠다. 관심과 사랑이 퍼져나간다면 길거리에서 밤을 보내야만 하는 사람의 수도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다. 오늘따라 온기가 느껴지는 어머니의 약손이 무척 그립다.

신준식 자생의료재단 명예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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