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한국경제 냄비속 개구리, 탈출시간 없다...혁신성장? 규제개혁에 먼저 속도내야"

KDI, 경제전문가 489명 인식조사

"방식도 사후규제로 바꿔야" 지적

0415A14 그래픽


지난 2015년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자 정부는 전기용품안전관리법과 공산품안전관리법을 통합한 전기안전법을 추진했다. 의류 등 생활용품에 대해서도 전기용품과 마찬가지로 안전 기준을 강화하겠다는 의도에서다. 결국 법은 통과 됐지만 의류·쇼핑 업체의 반발로 ‘전안법 사태’로까지 명명되며 일부 법 시행은 올해 말까지 미뤄졌다. 소규모 수입·유통업자들까지 품목별로 수십만원의 비용을 치르고 KC 인증서를 받도록 한 데 대해 영세상인들이 강력히 반발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연일 재정지원을 골자로 한 혁신성장 대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강화된 규제가 영세 기업의 시장 진입조차 가로막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규제개혁이 지지부진한 탓에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현재의 한국경제는 어둡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교수, 연구원, 대기업·중소기업 관계자, 금융업 관계자 등 경제 전문가 489명을 상대로 최근 실시한 인식조사에서 국가 경제가 ‘냄비 속 개구리’라는 지적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88.1%에 달했다고 전했다. 서서히 끓어 위기를 감지 못하는 개구리처럼 한국 경제 역시 규제·노동 개혁 등을 회피하다가는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더욱이 응답자의 63.8%는 한국 경제가 냄비에서 탈출할 시간이 1∼3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정부가 2일 혁신창업 정책 발표를 필두로 본격적인 혁신성장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지만 규제개혁이 선행되지 않는 한 역시 공허한 외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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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전문가들은 좀 더 적극적인 규제개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3일 ‘2018 한국경제대전망’ 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돈이나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각종 규제, 제도가 미비했기 때문”이라며 “정부의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 방안도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정부 돈을 퍼붓는 것은 옳지 않다. 혁신 창업기업은 규제만 완화해도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규제 완화가 더딘 이유로는 규제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행정편의주의, 증거에 기초하지 않는 규제 수립 문화가 꼽힌다. 이수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규제연구센터 소장은 지난 2일 기자 간담회를 열고 “규제개혁이 대기업만을 위한 것이라는 사회의 인식이 강하다”며 “규제 완화가 됐을 때 대기업이 수혜를 보는 것은 사실이지만 더 많은 이득은 벤처·중소기업에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부처별 칸막이 등 행정편의주의에 대한 규제 폐해로 ‘당뇨폰’을 사례로 들었다. 당뇨폰은 지난 2004년 벤처기업 인포피아가 LG전자와 함께 혈당 체크 기능을 탑재한 폰이다. 하지만 이 제품은 국내에서 2,000대를 팔고 생산이 중단됐다. 의료기기냐, 휴대폰이냐를 놓고 부처 간 의견이 통합되지 않다가 의료 기기로 분류되는 바람에 휴대폰 대리점에서 팔 수가 없게 됐고 인포피아는 결국 국내 사업을 접고 해외로 떠났다. 이 소장은 이와 함께 살충제 함량에 따라 차별적인 달걀 처리를 권고한 유럽과 달리 잔류 농약 허용기준치를 무시한 채 전량 폐기한 살충제 계란 사태를 예로 들며 “‘증거에 기반한 정책수립(evidence-based policy making)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규제를 효율적으로 하려면 과학적 사실과 시장의 현황 추이 등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한국의 규제 방식도 네거티브 방식을 포함한 사후규제로 전환돼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영국은 2015년 금융행위규제청(FCA)에 규제유예 권한을 전면 부여했다. FCA는 사업 신청서를 받아 기존 규제가 유예된 ‘규제샌드박스’ 내에서 사업을 허가하고 문제점을 정부에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 세계 핀테크의 수도가 영국이라는 명성을 갖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소장은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된 화장품법이 2012년 개정된 후 생산액이 27%, 종사자가 32% 증가했다는 사실을 참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세종=박형윤기자 manis@sedaily.com

박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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