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에클스의 실수와 이주열의 책무

권구찬 논설위원

초저금리 유동성 거품 걷어내야

진정한 우리 경제 기초체력 가늠

깜빡이 켰다면 실천하는 게 순리

이젠 통화긴축 연착륙 방안 고민을

권구찬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정통 한은맨이다. 지난 1977년 입행해서 2012년 봄 부총재를 끝으로 한은을 떠나 잠시 대학 강단에 선 것을 빼더라도 40년 가까이 중앙은행에서만 근무했다. 역대 한은 출신 총재가 대체로 매파 성향이 강한 것과 달리 이주열 총재는 발톱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출신은 매인데 행동은 비둘기라는 말도 나왔다.

그는 2014년 4월 총재 취임 후 4개월 만에 기준금리 인하를 필두로 지금까지 모두 5차례 인하했다. 단 한 차례도 인상은 없었다. 마지노선 같았던 2%대 벽을 깬 데 이어 1.25%까지 내렸다. 1%대 초저금리는 역대 총재 중 누구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이다.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한은은 용어 자체부터 부인했지만 디플레이션 방어, 세월호 참사 및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충격의 선제 대응, 조선·해운 구조조정의 연착륙 등이 명분이었다. 그 사이 가계 부채는 1,400조원으로 400조원 가까이 불어났다.


이 총재는 내년 3월 말로 임기가 끝난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할 것이다. 한은은 올 6월 비로소 긴축의 깜빡이를 켰다. 지난달에는 6년 만에 금리 인상 소수의견을 냈다. 그제 공개된 10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당장 금리 인상에는 표를 던지지 않았지만 인상 찬성 금통위원이 2명이나 더 있었다. 금통위원 7명 가운데 3명이 매의 발톱을 드러냈다면 금리 인상은 이제 7부 능선을 넘었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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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를 보자. 올해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보다 약간 높은 3%대로 예상된다. 통화정책의 지표인 국내총생산(GDP) 갭이 플러스로 전환하면 인상의 명분이 선다. 다만 반도체 착시와 추경 효과를 걷어내면 성장 속도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소비자물가는 여전히 낮다. 실업과 물가의 상관관계인 필립스 곡선은 너무 평평해졌다. 인플레이션 실종은 통화정책 결정에 최대 딜레마다. 이것은 금리 인상을 정당화할 수 없다. 하지만 가계부채가 너무 부풀었다. 초저금리가 부른 이지머니(easy money) 탓이다. 은행 돈을 빌려 전세 끼고 주택에 투자하지 않으면 뭔가 손해 봤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국민총생산에 육박하는 가계 부채 총량도 문제지만 가처분소득을 앞지르는 빚 증가 속도는 소비 활성화에 치명타다.

상황이 이럴진대 이 총재의 뇌리에는 ‘에클스의 실수’를 떠올릴 법도 하다. 매리너 에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1934~1948년 재임)은 1930년 중반 대공황 위기 탈출 조짐에 서둘러 출구 전략을 가동하다 파국으로 몰았다. 이른바 ‘더블딥 (이중 경기침체)’의 시초가 이때다. 그는 1937년 세 차례에 걸쳐 급격히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그러나 에클스의 실수는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에클스가 두 번째 기준금리 인상할 때부터 시장에선 적신호가 켜졌다. 그런데도 한 번 더 올렸으니 경제가 결딴나버린 것이다. 그 시절 ‘비밀의 사원’ 연준으로서는 선제 경고라는 개념조차 없을 때다. 영문도 모른 채 날벼락을 맞던 시절과 비밀의 문이 열린 지금은 천양지차다.

깜빡이를 켰다면 신호대로 방향을 바꾸는 게 순리다. “소통에 대한 비판이 가장 뼈아팠다”는 게 임기 반환점을 돈 이 총재의 회고였다. 그의 재임 중 통화정책 결정은 이달과 내년 1월과 2월 딱 세 번 남았다. 이제부터는 금리 인상의 충격을 어떻게 흡수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관건은 역시 긴축의 속도 조절이다.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른 1.5%라도 통화정책은 여전히 완화적이긴 하지만 초저금리 유동성 파티에 취한 시장으로서는 예기치 못한 돌발 악재에 휘청댈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시장과의 교감과 소통을 통해 안심을 시키는 일밖에 없다. 그것이야말로 차기 총재의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기도 하다.

유동성 잔치를 끝내야 우리 경제의 진정한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우리 경제는 너무 오랫동안 스테로이드에 의존했다. 파티가 막 달아오를 때 펀치볼을 치우는 게 중앙은행의 임무라는데 우리는 흥이 올라도 너무 많이 올랐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chans@sedaily.com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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