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 8월 제1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에서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한미 FTA에 규정된 피조사업체의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는 취지의 문제 제기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말 공정위가 미국의 대표 반도체 기업 퀄컴에 1조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사업 모델을 뜯어고치라는 시정명령을 내린 것을 겨냥했다. 미국이 한미 FTA 개정협상 과정에서 공정위의 조사 투명성을 문제 삼아 자국 기업에 유리한 제도 도입을 압박하고 퀄컴 제재 무효화까지 시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정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8월 서울에서 열린 제1차 한미 FTA 공동위원회 회의에는 미국 측의 요청으로 공정위 관계자도 배석했다. 이 자리에서 USTR는 한국 공정위가 조사 과정에서 한미 FTA 규정상 보장된 미국 기업들의 사건기록접근권·반론권 등 방어권 행사를 침해하고 있다는 내용의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인 기업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퀄컴 제재에 대한 우회적 압박”이라는 게 참석자들의 설명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말 퀄컴의 라이선스 관행이 특허권 남용에 해당한다며 1조300억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렸다. 불복소송 중인 퀄컴은 줄곧 한미 FTA 아래 보장된 절차상 방어권 행사를 거절당했다며 공정위 제재의 부당성을 주장해왔다.
문제는 보호무역주의 기치를 내건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 정부도 이 논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퀄컴 제재와 공정위 조사절차에 대한 미국 측의 문제 제기가 한미 FTA 개정을 둘러싸고 또 다른 통상마찰 이슈로 번질 수 있는 이유다.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피심인의 절차적 권리를 더 보장해야 한다는 원론적 문제 제기와 기존 한미 FTA 규정상 보장된 퀄컴의 절차적 권리가 침해당했다는 주장은 별개”라며 “우리 정부는 두 가지 문제를 분리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