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금융위원회는 국적선사 1위였던 한진해운을 전격 퇴출시켰다. 후폭풍은 컸다. 물류대란이 일어났고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이전에는 5.1%였던 국적해운사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1.7%로 급락했다. 금융논리에 의한 구조조정의 결과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문재인 대통령만 해도 당선 전 “한진해운 사태는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만 판단해 가볍게 결정한 데 따른 실패”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면 주요 기업 중에서는 산업적 판단에 따라 살아난 곳이 적지 않다. 금융 당국이 구조조정을 주도했지만 하이닉스와 대우조선해양은 기술유출과 산업 생태계, 일자리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했다. 청와대 서별관회의를 통해 산업과 국가 경제에 대한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측면도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성동조선도 2011년 수출입은행은 청산가치가 더 크다는 삼정KPMG의 보고서를 무시하고 재실사 끝에 자금지원을 계속해왔다. 산업과 일자리에 대한 고려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늘 있어온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8일 정부는 ‘대마’의 경우 산업적 측면을 강화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못을 박았다. 특히 △고용·지역경제 등 국민경제 영향이 큰 기업 △산업 전체의 구조적 불황 △국가전략산업으로 대상을 명시했다. 이들 기업의 구조조정에 있어서는 관련 정보를 관계기관과 공유하고 산업 생태계와 업황을 종합고려하며 주요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쉽게 말해 금융 당국이 쥐고 있던 정보를 관련 부처가 공유하고 일자리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전략산업인지 등 모든 요소를 다 반영하겠다는 뜻이다. 구조조정의 충격 완화를 위한 대책 마련 시에는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전문가도 참여시키기로 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제1과제인 일자리 문제가 구조조정의 최우선 가치가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구조조정을 통한 일자리 감소는 소득주도성장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일자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업은 퇴출시키지 않겠다는 것 아니냐”고 해석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내년 6월에 치러질 지방자치단체선거를 의식해 지방의 여론을 달래기 위한 판단이 고려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새 방침에 구조조정이 산으로 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구조조정은 타이밍이 생명인데 고려 대상과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들을 하나씩 설득하고 공통의견을 모으려다가는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칠 수 있다. 실제 사전 구조조정을 위한 산업진단만 해도 유관부처(기획재정부·산업부처·금융위), 연구기관(산업연구원·한국개발연구원), 관련 기관(금융감독원·산업은행 등)의 협의를 통해 산업진단이 필요한 주요 업종을 선정하고 정기 점검을 한다. 사전 진단만 해도 협의를 해야 할 곳이 7곳이 넘는다.
무엇보다 지역 여론을 감안하게 되면 구조조정 과정에서 우왕좌왕할 가능성이 높다. 청산가치가 높다는 결정에도 여론몰이에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는 탓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구조조정은 기본적으로 청산가치·존속가치와 자금조달 가능성을 따져 금융 측면에서 처리하는 것이 맞다”며 “산업 측면을 고려한 구조조정은 결국 웬만한 기업은 지원해서 살리겠다는 얘기로 들린다”고 지적했다.
내년 상반기에 조성하겠다는 1조원 규모의 구조조정펀드도 새로울 게 없다는 평가다. 4월 관련 계획을 발표한 바 있는데다 지금까지 구조조정펀드에 대한 논의가 수차례 있었지만 활성화되지 못했다. 1조원이라는 규모도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말 현재 성동조선의 원화장기차입금 잔액만 2조5,842억원에 달한다. 전직 정부 고위관계자는 “금융 당국 주도의 구조조정이 일부 독단적이고 산업적 측면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지만 속도가 생명인 구조조정에서는 장점도 있다”며 “구조조정펀드를 통한 구조조정이 쉽지 않다는 점은 이미 입증된 부분이며 모든 조건과 이해관계자를 참여시키고 설득하다가는 될 일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원에 구조조정의 방점을 두겠다는 의도는 아니며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이해관계자와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게 객관적 근거를 확보하자는 취지”라며 “부실기업을 살리는 방향으로 정해지더라도 구조조정펀드를 활용해 민간 중심으로 진행하도록 해 과거와 같은 혈세 낭비 논란을 불식시킬 것”이라고 해명했다. /세종=김영필·서민준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