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회복세가 본격화할 조짐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대다수 주요국에서 경기상승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IMF가 세계성장률을 상향 조정한 데 이어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2016년 3.1%에서 올 3.6%, 내년 전망을 3.7%로 높였다. 세계 평균성장률 3.7%는 과거 1990~2007년 호황기에나 경험했던 수치다. 더군다나 OECD 통계에 포함된 45개국 중 2017~2019년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나라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지난 10년간 가장 부진했던 유로 지역까지 완연한 봄을 예고한다.
우리나라도 3·4분기 깜짝 성장 덕분에 올 3%대 성장률 달성이 확실해진 것은 다행이지만 반도체 호황에 따른 착시현상을 경계해야 한다. 단기성장률 변화에 일희일비할 때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미래 성장전략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이미 2%대로 떨어졌고 지속 하락이 예고된 잠재성장률의 반전이 핵심과제다. 올해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 인구)가 줄기 시작한 상황에서 노동생산성 제고와 기업투자 활성화가 일자리 창출과 혁신성장의 관건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햇볕 있을 때 지붕 고쳐야 한다”는 서양속담이 있다. 글로벌 경기호전의 훈풍이 부는 지금이야말로 구조개혁의 적기(適期)라는 의미다. 기업도 잘나갈 때 구조조정과 경영혁신의 강도를 높여야 하는 것처럼.
20년 전, 1997년 12월은 IMF 구제금융 지원금이 인출된 달이다. 국제기구의 긴급수혈이라는 뼈아픈 경험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국가 경제의 체질개선과 체력강화가 필수라는 교훈을 남겼다. 당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추진된 개혁 프로그램부터 시작해 지난 20년간 많은 노력과 변화가 있었다. 외화 유동성과 금융시스템 개선은 물론 주력기업의 글로벌 경쟁력도 높아졌다. 그러나 최근 IMF의 지적같이 한국의 대외 건전성은 개선된 반면 대내 경제체질은 약화돼 규제·노동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경고는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개혁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개혁은 혁명과 달리 한방에 안 된다. 개혁기조가 일관되게 유지돼야 실효를 거두는데 정책은 수시로 바뀐다. 둘째, 막상 위기에 닥치면 “환자 상태가 너무 나빠서 원기회복 후 수술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나름 설득력이 있지만 대체로 고통스러운 개혁의 회피 논리로 이용된다. 셋째, 일단 경기회복세에 들어서면 이제는 수술이 필요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진다. 반개혁적 방향으로 역주행하기도 한다. 넷째, 개혁과정에서 불거지는 이해관계자의 저항 때문에 정치적 셈법으로 봉합된다. 개혁은 추진동력을 잃고 땜질 처방으로 덮이기 십상이다. 결국 우리는 단기유동성 부족과 같은 급성질환 치료에는 강하지만 이해상충이 크고 자각증세가 적은 만성질환의 치유에는 약하다는 것이 문제다.
세계 경제 회복세 속에서 하방 리스크에 대한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통화기조도 ‘밀물(돈 풀기) 시대에서 썰물(돈 빼기) 시대’로 바뀌는 변혁기를 맞고 있다. 양적완화 정책의 끝자락에서 향후 시장충격에 대비해야 하고 임계점에 이른 중국의 과잉부채 여파로 신용위기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위험관리시스템도 강화해야 한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속성장을 위해 부채감축과 투자촉진이 당면 최대현안이라고 지적한다. 부채관리의 정도(正道)는 투자·성장·고용·소득 증대의 선순환 구축이고 규제 완화를 통한 민간투자 확대는 시급한 과제다.
다가오는 2018년 새해는 글로벌 금융위기 10주년이 되는 해다. 안보·경제 비상시국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성장잠재력 하락과 산업경쟁력 약화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선제적 구조개혁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철저한 위기의식 없이는 성공적 개혁의 필수조건인 사회적 공감대를 이룰 수 없다. “개혁하기에 오늘보다 좋은 내일은 없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역동적 경제생태계 조성과 강력한 혁신성장 추진을 위해서 더욱 그렇다.
서울경제신문 기명칼럼진에 전광우 초대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추가됩니다. 전 초대 금융위원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학사, 인디애나대 경제학 석사,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미시간주립대 경영대학 교수, 국제부흥개발은행 수석연구위원을 거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특보, 국제금융센터 소장, 우리금융 부회장, 딜로이트코리아 회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