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구자들은 미국 자동차 시장 수요의 가격 탄력성을 1.2~1.5 정도로 보고 있다. 무슨 말이냐면 특정한 차의 가격이 10% 오르거나 내리면 12~15%의 수요가 감소 또는 증가한다는 뜻이다.
미국 자동차 시장이 이처럼 가격에 탄력적인 것은 대체재가 많기 때문이다. 전 세계 수많은 자동차 업체가 경쟁하고 있어 미국 소비자들은 선택의 폭이 넓다. 비싸면 다른 차를 사면 그만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서 미국은 한국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활을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한미 FTA에 따라 한국 자동차는 지난 2016년부터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되는데 미국은 최소한 독일과 일본 차와 같은 수준인 2.5%의 관세를 매겨야 한다고 주장할 것으로 업계는 점치고 있다.
만약 관세가 부활하면 현대·기아차는 관세만큼 차 가격을 올리기 어렵다. 관세만큼 가격을 올리면 그보다 더 많은 비율의 고객이 떨어져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마케팅 비용이나 딜러에게 가는 몫 등을 줄여 가격을 유지해야 하는데 마케팅 축소는 장기적으로 악순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얘기는 어디까지나 이론이고 현실은 다르다.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히트 상품은 높은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심리적 저항을 쉽게 돌파한다. 특히 자동차 같은 감성 소비재는 ‘갖고 싶다’는 욕망이 개입되면 ‘가성비’ 같은 이성의 판단 영역이 쉽게 무력화된다.
현대·기아차도 과거 미국에서 이 같은 히트 상품의 역사를 쓴 적이 있다. 준중형 세단 ‘아반떼’는 지난 2012년 1월 ‘북미 올해의 차’에 선정되며 최고의 각광을 받았다. 2011년 미국에서 17만대 이상 팔렸는데 이는 전년 대비 50% 가까이 늘어난 판매량이다. 당시 아반떼는 생애 첫 차를 사는 미국 여성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차였고 대학생들이 특히 사고 싶어하는 차였다.
아반떼가 잘 팔리자 상위 모델인 ‘쏘나타’에도 변화가 왔다. 50대 백인 남성이 쏘나타를 사기 시작한 것이다. 10대 때부터 차를 몰던 백인 남성들은 50대가 되면 매우 보수적인 선택 기준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고장 안 나는 차’다. 이들이 쏘나타를 사기 시작했다는 것은 품질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일본차에 근접했다는 얘기로 해석됐다.
현대·기아차는 미국 시장에서의 최근 판매부진 이유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인업이 부족하고 픽업트럭이 없어서”라고 말하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다. 진짜 이유는 히트 상품이 없어서다. 아반떼와 쏘나타가 혁신에 실패한 사이 소비자들이 대체재를 찾아 대거 이동했다. 여기에 엔진과 변속기 개선, 차량 경량화 등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겉만 바뀌는 차’의 이미지까지 쌓였다.
현대·기아차가 최근 유명 디자이너를 잇따라 영입해 디자인을 강화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기술혁신에 실패한다면 ‘디자인이 우수한 차’가 아니라 ‘겉모습만 그럴듯한 차’라는 얘기를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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