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잔치’ ‘백인 프리미엄의 극치’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던 그래미가 올해는 달라졌다. 하와이 출신의 리듬앤블루스(R&B) 아티스트 브루노 마스가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노래상’ ‘올해의 앨범상’ 등 3대 주요 상을 비롯해 7개 부문을 수상했다. 지난해 ‘올해의 앨범상’만은 비욘세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관측을 깨고 백인 아티스트 아델에게 3대 주요 상을 몰아준 것과는 대조를 이룬 것. 흑인 가수의 수상이라는 점은 이례적이지만 그래미의 관행대로라면 그의 수상은 예정된 것이나 다른 없다는 평가다. 디지털 음원으로 시장이 재편된 가운데도 앨범 판매량이 압도적인데다, 마스의 음악은 그래미가 지지해온 음악인 팝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2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60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마스는 ‘24K 매직(24K Magic)’으로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앨범상’을 이 앨범에 수록된 ‘댓츠 왓 아이 라이크(That’s What I like)’로 ‘올해의 노래상’을 각각 수상했다. 마스는 그래미에서 ‘베스트 팝 보컬 앨범상’ 등을 수상한 적은 있으나 ‘올해의 노래’ 등 주요 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스는 “10년 동안 함께 음악을 해 온 친구들”이라며 동료들을 소개하며 “음악 산업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험한 일들을 겪고 이 자리에 섰다. 동료와 팬들에게 감사하다”며 감격에 겨워했다. 그는 또 “15살 때 하와이에서 관객 1,000여 명 앞에서 노래 불렀던 때가 떠오른다”며 과거를 회상하기도 했으며, 함께 후보에 올랐던 비욘세의 남편 제이지, 켄드릭 라마 등을 가리키며 “여러분들의 음악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내게는 경쟁심을 심어줬고, 열심히 노래하게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그래미는 ‘베스트 신인상’ 알레시아 카라를 비롯해, ‘베스트 팝 솔로 퍼포먼스’ 부분은 한국에도 상당한 팬덤을 확보한 에드 시런의 ‘셰이프 오브 유(Shape of You)’,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분은 포르투갈. 더 맨의 ‘필 잇 스틸(Feel It Still)’ 등 84개 부문을 시상했다.
마스의 3개 부문 수상에도 불구하고 그래미는 저항정신의 상징인 힙합과 랩 음악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보수적이라는 지적이다. 비욘세의 남편 제이지는 정규앨범 ‘4:44’ 로 ‘올해의 레코드상’ 등 8개 부문에 이름을 올려 최다 부문 후보자가 됐지만 수상은 불발됐다. 켄드릭 라마는 ‘댐.(Damn)’의 수록곡 ‘험블(Humble)’로 ‘베스트 랩 퍼포먼스상’과 ‘베스트 랩 송상’, ‘베스트 뮤직비디오상’을 받았다. 리아나와 함께 부른 ‘로열티(Loyalty)’로는 ‘베스트 랩/성 퍼포먼스상’을, 이 노래들이 수록된 앨범 ‘댐.’으로는 ‘베스트 랩 앨범상’을 받아 5관왕을 기록했다. 라마는 “랩 음악이라는 것은 내게 커다란 의미가 있다. 힙합 덕에 무대 위에 설 수 있었고 가족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며 “힙합은 모든 사람에게 그런 기회를 주는 장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힙합을 통해)해야 할 말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감격의 수상 소감을 전했다.
지난해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여배우들의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인 ‘미투(#Metoo)’ 바람이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이어 그래미에서도 이어졌다. 지난 7일 열린 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레드카펫이 온통 검은 드레스 물결로 뒤덮었다면 그래미는 ‘흰 장미’로 장식됐다. 흰 장미는 최근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주축이 돼 결성한 성폭력 공동대응 단체 ‘타임스 업(Time’s Up)’ 운동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보여주기 위한 상징물이다. 그동안 파격적인 의상을 선보여왔던 레이디 가가는 검은색 드레스 차림에 가슴에 흰 장미를 달았고, 엘튼 존은 피아노 위에 흰 장미를 올려놓은 채 마일리 사이러스와 축하공연을 펼치기도 했으며, 시상자는 물론 관객들 역시 흰색 장미를 달아 ‘미투 캠페인’에 지지를 보냈다. 또 가수들뿐만 아니라 힐러리 클린턴은 트럼프 비판서로 알려진 마이클 울프의 저서 ‘화염과 분노 : 도널드 트럼프의 백악관 뒷이야기’ 중 직접 고른 대목들을 한 줄 한 줄 읽어 트럼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