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북핵 문제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미북 간 핵 대화가 열릴 것인가. 열린다면 북한의 비핵화가 가능할 것인가. 평창올림픽이 끝난 지금 이런 것들이 우리 국민의 관심사다. 그런가 하면 서해에서의 중국 군함들의 위협적인 활동, 중국 군용기들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침범 등과 관련된 보도도 국민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늘 이런 식이었다. 즉 북한의 핵 개발, 미사일 실험, 도발 등이 국민의 안보 걱정에서 ‘주메뉴’였고 중국 문제는 잊을 만하면 부각되는 ‘양념’ 메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반대가 될 것이며 20년쯤 지나면 중국의 완력 정치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비적대·우호적 한중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한국의 최대 안보과제가 될 것이다.
현재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력과 커진 근력(筋力)을 바탕으로 중화패권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국은 ‘신형 대국 관계’를 앞세워 미중 간 수직적 관계를 청산하고 ‘신실크로드 및 일대일로’ 구상으로 중국을 세계 중심국가로 우뚝 세우겠다는 포부를 펼치고 있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저력을 바탕으로 지난 30년간 매년 두 자릿수의 국방비 증가를 기록하고 있으며 지난 2017년 10월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오는 2035년까지 군 현대화를 달성하고 2050년까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갖추겠다고 선언했다. 그것이 시 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이고 ‘강군몽(强軍夢)’이다.
이를 위해 시 주석은 군 현대화에 박차를 가해왔고 2016년 2월 종래의 방어형 7개 군구(軍區)를 공격형 5대 전구(戰區)로 개편했으며 심복들을 군 요직에 포진시키는 작업도 진행했다. 이에 따라 중국군은 하루가 다르게 ‘대륙 방어형’에서 ‘해외 투사형’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각종 첨단무기 분야에서 미국과 경쟁하고 있다. 중국 해군 역시 연안 방어형에서 원정형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벽돌을 찍어내듯 매년 십수 척의 대형 군함을 건조해내고 있다. 중국 해군은 이미 두 척의 항모를 실전 배치한 데 이어 3번 함을 건조하고 있으며 도합 여섯 개의 항모전단을 보유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힘을 바탕으로 중국은 미국이 주도해온 동북아 안보질서를 중국이 지배하는 것으로 바꾸려 하고 있고 남중국해의 내해화(內海化)와 인도양에 대한 주도권 강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주변국들에는 ‘수직적 서열’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에 대단히 중요한 이웃 대국이며 한국으로서는 중국과의 비적대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합리와 순리를 무시한 중국의 무지막지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에서 경험했듯 이미 힘에 도취한 중국이 한국을 위시한 주변국들의 동등한 주권을 존중하고 정중하게 대접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중국은 지금도 대국논리를 앞세워 서해 배타적경제수역(EEZ)의 경계선 획정을 거부하고 있으며 중국 어선들은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한국 해역에서 불법조업을 일삼고 있다. 한국으로 날려보내는 미세먼지에 대해 일언반구의 유감 표시도 없다. 그러면서도 서해의 내해화와 한일의 방공식별구역 무력화마저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앞으로 당할 수 있는 일들의 시작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중국의 구미를 맞추는 외교로 원만한 한중 관계를 이끌어나가고 미중 간 등거리 외교로 동맹도 끌고 갈 수 있다고 믿는다면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어정쩡한 친중(親中)을 위해 동맹을 약화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중국의 완력정치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고 대등한 주권국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익은 ‘균형자론’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균형자는 충분한 국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며 국력이 미약한 나라가 균형자 역할을 자청하다가는 양쪽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핀란드화(Finlandization)로 귀결되고 만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한국이 제대로 된 나라라면 20년 후의 중국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경제 성장에 역점을 둬야 하고 지금쯤 대중 경제의존을 줄여나가면서 안보 문제에서 정론을 준수함으로써 장차 중국에 의해 휘둘리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마스터플랜이 작동하고 있어야 한다.
김태우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전 통일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