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이 국내 펀드시장에도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연기금 자산 증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되면서 국내펀드 순자산이 연일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코스닥벤처펀드 활성화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작용하면서 주변 대기자금이 펀드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2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펀드 순자산은 지난 25일 기준 557조3,981억원을 기록했다.
국내펀드 순자산액은 꾸준히 늘어나다 2월2일 544조4,382억원으로 당시 최대치를 기록한 뒤 하락세를 보였다. 지난달 중순 증가세로 돌아선 후 이달 17일 550조원을 처음 돌파하고 18일 552조7,067억원, 19일 552조7,435억원, 20일 553조5,655억원 등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번주 들어 미국 국채금리 급등으로 증가세가 잠시 주춤한 모습을 보였지만 하루 만에 증가세로 돌아서며 역대 최고치를 다시 한 번 경신했다. 유형별로는 2월2일 대비 단기금융을 제외하고 모든 유형이 증가했다. 증권(주식·채권 등) 241조3,031억원, 파생형 48조5,418억원, 부동산 65조2,734억원, 특별자산 60조1,824억원, 혼합자산 18조509억원을 기록했다. 단기금융은 125조5,549억원에서 지난달 말 105조8,621억원까지 줄어들다 25일 121조3,899억원까지 회복됐다.
펀드 순자산이 증가한 근본적인 원인은 연기금 자산이 증가하고 글로벌 증시 변동성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개인연금이나 퇴직연금 등 연금자산에서 빠져나가는 자본보다 적립이 크게 늘어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데다 미국발 조정 장세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주춤했던 펀드 규모 증가세가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삼성자산운용 관계자는 “올해 2월 미국발 조정 장세에 접어들면서 국내펀드 규모의 증가세가 주춤했지만 증시 변동성이 커짐에 따라 펀드 수요는 오히려 늘어났다”며 “주식형과 채권형 펀드가 증가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금융투자자들의 투자성향이 예금·적금 위주에서 펀드 같은 간접투자자산으로 이동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범광진 KB자산운용 리테일본부 부장은 “개인들의 투자 방식이 많이 변했다”며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금융투자자들의 간접투자가 쉽게 이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국내 주식에 대한 배당성향이 확대되고 있는 최근 분위기도 주식형 펀드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며 “지난해부터 글로벌 경제 전체가 회복세에 들어선 점도 투자심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
특히 최근에는 남북·북미 정상회담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되고 코스닥벤처펀드가 활성화되는 등 투자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들이 잇따라 감지되는 점도 긍정적이다. 범 부장은 “남북 정상회담 등 지정학적 긴장 완화가 투자심리 개선에 도움을 줘 모든 유형의 투자자산에 자금이 몰리고 있다”며 “출시 8거래일 만에 순자산 1조원을 돌파할 정도의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코스닥벤처펀드의 초반 인기와 맞물려 펀드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코스닥벤처펀드 출시와 맞물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4월 들어 국내펀드 순자산이 최대치를 계속해서 경신하고 있다”며 “정상회담이 다가오면서 남북 경제협력 수혜 대표업종 관련 펀드 수익률이 높아진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펀드평가사 KG제로인에 따르면 남북 경제협력 수혜 대표업종으로 꼽히는 건설주 관련 펀드의 수익률은 선두로 올라선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기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미래에셋 TIGER200 건설상장지수펀드’의 경우 최근 한 달 수익률이 18.69%에 달했다. 삼성자산운용의 ‘삼성 KODEX 건설상장지수펀드’도 15.7%의 수익률로 뒤를 이었다. 운용 순자산 100억원 미만인 KB자산운용의 ‘KB KBSTAR 200 건설상장지수펀드’ 역시 최근 1개월 수익률이 18.73%를 기록했다. 경제협력 수혜 대표업종 관련 펀드 수익률이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펀드 평균 수익률(2.62%), 코스피 상승률(2.37%)의 6~8배에 달한 셈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정상회담 결과와 경협 재개 수준을 예단하기 어려운 만큼 섣부른 투자는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실적이 아닌 기대감에 오른 주가는 작은 변수에도 취약하다”며 “결론적으로 앞으로 펀드 순자산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단기적인 흐름과 국내 정책, 글로벌 트렌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