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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연극 '하이젠버그']예측 불가능한 우연 속에 춤추는 '우리의 삶'

전혀 다른 인생 살아온 두남녀

붐비는 기차역서 충돌 계기로

서로의 삶바꾸는 이야기 그려

33살 차이 남녀의 사랑을 연기하는 배우 정동환(오른쪽)과 방진의.  /사진제공=리앤홍33살 차이 남녀의 사랑을 연기하는 배우 정동환(오른쪽)과 방진의. /사진제공=리앤홍



우리의 삶을 정의하고 설명할 때 흔히 사건을 중심으로 나열하기 마련이다. 생로병사, 성취와 실패 따위의 인생의 터닝포인트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잊고 있는 게 있다. 우리의 삶을 춤추게 하고, 노래하게 하는 것은 바로 사건과 사건 사이 반복되는 우연들이라는 것을. 우연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예측도, 대비도 할 수 없다. 그저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드는 우연 속에 유영할 뿐이다.

‘예측 불가능한 내일이 기대되는 삶’을 슬로건으로 무대에 올려진 연극 ‘하이젠버그’는 우연히 나타나 삶을 바꾸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품인 동시에 우연 속에 춤추는 우리의 삶을 반추하는 작품이다.


하이젠버그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입증한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 Heisenberg)’에서 유래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세상은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올 확률이 2분의 1인 세계가 아니다. 교통사고 사망률이 인구 10만 명당 10명이어도, 이혼율이 인구 1,000명 당 2.1명이어도 내게 일어난다면 통계나 확률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의 삶은 다른 존재와 끊임 없이 운동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나아가고 뒷걸음친다. 이 연극에선 물리학의 법칙이나 통계를 나열하진 않지만 각자가 지닌 크고 작은 비극을 딛고 우연히 서로에게 다가서고 스며드는 두 남녀가 등장해 관객들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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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살 차이 남녀의 사랑을 연기하는 배우 정동환(오른쪽)과 방진의.  /사진제공=리앤홍33살 차이 남녀의 사랑을 연기하는 배우 정동환(오른쪽)과 방진의. /사진제공=리앤홍


연극은 무려 33년의 나이 차에,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런던의 붐비는 기차역에서 우연히 충돌한 후, 점차 서로의 삶에 스며들어 위로가 되어 주는 과정을 그린다.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으로 유명한 극작가 사이먼 스티븐스(Simon Stephens)의 최신작으로, 2015년 6월, 미국에서 가장 인정받는 흥행 보증 연극 단체인 ‘맨해튼 시어터 클럽’에서 초연된 이후 ‘올해 최고의 연극’이라는 평을 받았다. 설계도면처럼 꾸며진 독특한 무대, 등·퇴장 없이 무대 위 의상 트레이에서 옷과 소품을 바꾸며 장면을 전환하는 독특한 진행방식이 흥미를 자아낸다. 특히 2인극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연극의 진수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이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두 배우의 열연이다. 남자 주인공 ‘알렉스’는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해보고, 런던을 벗어나 본 적도 없으며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정육점을 운영해 온 75세 황혼기 남성이다. 배역을 맡은 정동환은 알렉스의 정적인 모습에서부터 극의 진행에 따라 생기를 얻는 한 남자로 열연한다. 여자 주인공인 42세 미혼모 ‘조지’는 충동적이며, 거침없는 말과 행동을 보이지만 객석을 전율하게 하는 매력을 지닌 여성이다. 방진의는 시종일관 떠들고 알렉스를 당황하게 하는 조지 그 자체로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극 중 알렉스는 음악의 아름다움은 음표 위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음표와 음표 사이 공간에 있다고 한다. 이 연극이 말하는 핵심이 여기에 있다. 우리의 삶도 사람과 사람 사이 공간에 있다. 극장을 나설 때쯤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나에게 스며드는 사람을 떠올려볼 법하다.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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