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합병주총 하나 제대로 못여는 한국 대기업의 현실

현대자동차그룹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간 분할합병이 결국 연기되는 사태를 빚고 말았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의 모듈·AS부품사업을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안건을 올리기로 했던 임시 주주총회를 21일 취소했다. 미래 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이뤄졌던 지배구조 개편에도 제동이 걸린 셈이다.


합병 주총이 무산된 것은 회사 설명대로 “주주 및 시장과의 소통이 부족한 탓”이 크다고 봐야 한다. ISS와 글래스루이스 등 국내외 자문기구들이 합병비율을 문제 삼아 잇따라 반대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태의 발단이 기업사냥꾼인 헤지펀드 엘리엇으로부터 촉발됐다는 점에서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장기적 기업가치보다 배당금부터 챙겨야 한다는 외국계 펀드의 공세에 따른 후폭풍이 만만찮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벌써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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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데 대해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규제당국은 그동안 시한은 물론 구체적 해법까지 못 박아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을 몰아붙였다. 현대차로서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제시된 순환출자 해소와 금산분리를 지키며 미래 투자동력을 확보하느라 선택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사실상 국부펀드인 국민연금은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모습으로 일관했으니 우호지분이 31%에 불과한 현대차로서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부와 외국계 펀드의 상반된 요구에 휘둘려 합병 주총조차 제대로 열지 못하는 국내 대기업의 답답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은 기업 지배구조에 정답은 있을 수 없다고 충고한다. 개별기업의 여건이나 경제적 상황 등을 따져 자율적으로 선택해야 경제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대주주 지분율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적절한 경영권 보호장치가 없다면 언제든 외부 입김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기업이든 정부든 이번에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더 큰 화를 자초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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