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주역인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현대자동차그룹에 전격 영입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수입차에 25%의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고 윽박지르는 가운데 김 전 본부장이 절박한 현대차그룹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셈이다. 김 전 본부장은 한국 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정교하게 정리해 미국 측 설득에 나설 계획이다.
10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김 전 본부장을 ‘특별자문’으로 지난 9일 위촉했다. 김 전 본부장은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6층에 마련된 사무실에 비상근으로 출근하며 통상 관련 대응을 지휘하게 된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에게도 대미 통상 문제에 대해 자문할 예정이다.
김 전 본부장은 2007년 한미 FTA 때는 한국 측 수석대표였고 2008년 추가 협상 때는 장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아 온몸으로 미국을 상대했다. 그만큼 미국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한미 FTA 때나, 추가 협상 때나 자동차가 최대 현안 중 하나였던 만큼 자동차 산업이 양국에서 어떤 의미와 무게를 갖는지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다. 김 전 본부장은 이날 서울경제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자동차 통상은 국익과 직결되는 사안”이라며 “(현대차그룹에서도) 나라에 도움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전 본부장은 9일 첫 출근에서 가장 먼저 현대·기아차가 미국 상무부에 낸 의견서부터 검토했다. 김 전 본부장은 “의견서 내용이 정리가 잘 됐더라”면서 “현대·기아차가 가진 미국 내 딜러십 네트워크와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를 조직화해 관세 부과 반대 목소리를 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입차 관세가 미국 경제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논리를 만드는 부분에서 제가 가진 지식과 능력을 나누겠다”고 밝혔다.
김 전 본부장은 미국으로서도 수입차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라고 본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예상을 뛰어넘는 승부를 벌이는 사람이어서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본부장은 우선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수입차에 232조를 발동해 전선을 한국, 유럽연합(EU), 일본으로까지 넓히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다. 특히 한국은 한미 FTA에 따라 현재 자동차 관세가 0%다. 비관세 장벽도 2010년의 자동차 추가 협상과 올해 3월 한미 FTA 개정 협상을 통해 상당 부분 완화됐다. 김 전 본부장은 “3월 합의가 현재 미국 의회에 가 있고 아직 최종 서명이 안 된 상태인데 미국이 자동차 얘기를 다시 하자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엇보다도 김 전 본부장은 수입차에 대한 고율 관세가 미국 경제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는 “철강도 미국 내 생산이 수요를 못 따라가니 관세 부과 후 결국 미국 시장 내 철강 가격이 올라갔다”며 “자동차도 같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연간 차 수요는 1,800만대이고 현지 생산은 1,000만대이니 800만대는 외국에서 와야 한다”며 “수입차에 관세를 매기면 소비자 부담이 늘어나거나 차 선택의 폭이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 내 차 산업은 이익을 볼지 몰라도 소비자 후생은 더 큰 폭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차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를 강행한다면 ‘누가 미국 내 생산량이 더 많느냐’의 싸움이 될 것으로 김 전 본부장은 내다봤다. 현대·기아차의 미국 판매 중 절반은 미국에서, 나머지 절반은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구조다. 미국 생산을 늘려 대응하면 되겠지만 투자와 공장 증설에는 시간과 돈이 들고 무엇보다도 노조와의 단체협약상 일감을 해외로 돌리기가 대단히 어렵다.
특히 중·소형, 중·저가 차에 강점을 가진 현대·기아차에는 고율 관세가 더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김 전 본부장은 설명했다.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고객은 관세 때문에 차 값이 오른 뒤에도 구매 여력이 있는 부유층이지만 중저가 차 고객은 1,000달러만 올라도 다른 차를 찾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김 전 본부장은 “수입차 관세 문제를 다룰 공청회가 미국에서 열릴 예정”이라며 “논리를 잘 정비해 미국 측을 설득할 수 있도록 자문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