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낙하산 공모제' 이제 그만!

조상인 문화레저부 차장

조상인 차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연간 사업예산이 2,000억원에 이르는 대표적인 문화예술 지원 기관이다. 현재 기관장 공석인 상태다. 지난 2월 고려대 명예교수인 황현산 전 위원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3개월 만에 사퇴하면서 5개월 이상 수장 공백기를 보내고 있다. 예술위는 7월16일부터 30일까지 위원장 공모를 진행했다. 다수의 인사가 지원했으니 ‘미달’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서 추려진 3~5명의 후보자 중 한 사람이 문화체육관광부 인사추천위원회를 통해 최종적으로 선임된다. 이례적인 것은 ‘신임 위원장 후보자 대상 면접질문 공모’다. 예술위는 20~30일 홈페이지에서 위원장 후보자에게 묻고 싶은 내용을 공모했다. 선정된 면접 질문은 8월16일 면접전형에서 활용되고 내용 또한 홈페이지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문화예술위원회는 전문적인 조직이다.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모든 이가 창조의 기쁨을 공유하고 가치 있는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이라는 자칫 피상적일 수 있는 목적을 위해 기관이 수행해야 할 법률·행정·재정 등의 업무가 지극히 까다롭다. 위원장의 경우 예술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은 물론 나름의 통찰과 철학까지 겸비해야 한다. 그런 위원장 면접질문이니 문화계 전문가도 고심 끝에 짜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예술위는 면접질문까지 공모하는 무리수를 뒀다.


그럴 만도 했다. 예술위는 지난 정부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행기관으로 지목된 바로 그 기관이다. 돈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2015년 6월 취임한 박명진 전 위원장이 예술인 지원 배제자 명단인 블랙리스트의 실행 책임자로 지목돼 지난해 6월 불명예 퇴진했다. 새 기관장 인선에 5개월 이상의 난항이 있었고 힘겹게 뽑힌 황 전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를 겪었다. 예술위는 진행되고 있는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와 청산을 위해 구성원들이 여전히 각종 감사와 조사에 불려다니는 등 진통을 겪고 있다. 여기에다 기관장 공백으로 두 번의 타격을 입은 셈이다. 그러니 추락한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는 중압감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공정한 법조인을 선출하기 위해 일반인들이 변호사 시험문제를 출제할 수 없듯 위원장 면접질문을 공모하는 일은 다소간 억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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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장 ‘공모제’의 취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것이 가장 적합한 인물을 뽑는 최적의 방법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2003년 임명된 김윤수 전 관장 이래 공모제로 선임된 관장 중 3년의 임기를 채운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전당장 공모는 무려 5차까지 진행됐으나 매번 적임자가 없어 선임에 실패했다. 지금도 전당장은 직무대행 체제다. 그 외에도 정부 산하의 문화예술계 기관장 자리가 상당수 비어 있다.

업계 현장에서는 명분만 내세운 공모제라며 자조적 목소리가 높다. 오죽했으면 ‘낙하산 공모제’라는 말도 들릴 정도다. 공모제의 취지는 투명성이다. 그것이 답답한 횟집 수조의 투명함이라는 게 문제다. 자유롭고 맑게 ‘흐르는 물’의 투명함을 기대한다.

/ccsi@sedaily.com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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