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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인터뷰] ‘공작’ 황정민, 초심 되새겨..“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관객들한테 책을 선물한다는 느낌으로 작품 선택”

“스스로의 밑바닥을 보면서 초심으로 돌아가"

"관성 깨려 노력..뼈로 연기하는 심정"

“바닥을 쳤다”

충무로의 흥행 보증수표인 배우 황정민이 영화 ‘공작’을 촬영하며 느낀 솔직한 심정이다.


‘신세계’의 조직 보스, ‘국제시장’의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삶으로 겪어낸 한 아버지, ‘곡성’의 무당, ‘아수라’의 절대악, ‘군함도’의 부정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역할을 자유롭게 오가던 그가 ‘공작’에서 한계에 부딪쳤단다.

연습을 아무리 해도 생각처럼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자괴감을 느낀 그가 찾은 해결책은 솔직해지는 방법 밖에 없었다. “이번 작품은 대사를 뼈로 외울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라고 말할 정도.

배우 황정민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배우 황정민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공작’(감독 윤종빈)은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가 남북 고위층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첩보극.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고(故) 김대중 당시 대선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안기부가 주도한 흑금성(박채서) 사건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지난 5월 제71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스크리닝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황정민이 ‘공작’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흥미를 떠나서 꼭 알려야 하는 이야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밌는 얘기를 들으면 자신만 알고 있는 걸 참지 못하는 광대 기질 때문이기도 하다. 관객들에게 늘 ‘책을 선물한다는 기분’으로 작품을 선택한다는 그의 말은 여러 의미가 내포 돼 있었다.

“작품을 고를 땐 관객들한테 책을 선물한다는 생각을 먼저해요. 상대방이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기 때문에 책을 선물하는 건 어려워요. 제일 중요한 건 이야기라고 봐요. 읽는데 너무 재밌어서 책장 넘기기 아까운 책들이 있는데, 전 그런 책을 골라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고, 현실이 반영 돼 귀가 열릴 수 있는 이야기를 찾고 있어요. 광대로서 전 그런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요.”

극중 첩보원 흑금성과 일반 사업가를 오가며 연기한 황정민은 “<공작>은 기본적으로 대사 양이 너무 많아 셰익스피어 연극이 생각날 정도였다”고 말했다.극중 첩보원 흑금성과 일반 사업가를 오가며 연기한 황정민은 “<공작>은 기본적으로 대사 양이 너무 많아 셰익스피어 연극이 생각날 정도였다”고 말했다.


<공작>은 첩보영화라는 장르적 특성과 9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을 리얼하게 담아냈다.<공작>은 첩보영화라는 장르적 특성과 9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을 리얼하게 담아냈다.


<공작>은 모든 한국인에게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갈 수 없는 나라’로 남아있는 북한에 홀로 잠입했던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이끈다.<공작>은 모든 한국인에게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갈 수 없는 나라’로 남아있는 북한에 홀로 잠입했던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이끈다.


‘공작’은 실제 남과 북 사이 벌어졌던 첩보전의 실체를 처음으로 그리는 한국 영화다. 윤종빈 감독은 실화의 재미가 있기 때문에 굳이 액션을 첨가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치열한 ‘심리전’을 바탕으로 한 신개념의 스파이 첩보영화가 탄생했다. 반면 평범한 사업가의 서글서글함과 치밀한 스파이의 두 얼굴을 오가며 ‘공작’의 긴장감을 책임져야 하는 황정민에겐 결코 쉽지 않은 임무가 주어졌다.

“‘공작’은 기본적으로 대사 양이 너무 많아 셰익스피어 연극이 생각날 정도였어요. 또 1인 2역에 가까운 연기를 하며 거짓을 마치 진실처럼 이야기하며 상대방을 속여야 했지만 관객들에게는 이런 나의 속내까지 이해시켜야 했기에 이런 중첩된 감정을 표현하는 게 만만치 않았어요. 실화가 아니었으면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정말 많았을텐데, 실존인물이 계시기 때문에 배우로서 시도할 수 있는 부분이 더 제한적이었어요. 흑금성일 때는 표준어에 사무적이고 다소 딱딱한 말투로 연기했던 반면 사업가로 보여야 할 때는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했죠. 말투나 표현으로만 구분 할 수 밖에 없었어요.”


‘공작’은 캐릭터들 간 고도의 심리싸움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로지 대사로 긴장감을 끌고 간 탓에 ‘구강액션’ 첩보물이란 수식어도 붙었다. 윤종빈 감독도 “대사가 액션으로 느껴지게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황정민은 “한 장면 한 장면이 산 넘어 산이었다”고 압박감과 부담감을 토로했다. 그럴수록 마음을 여는 자세가 필요했다. 그는 동료 배우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도움을 청하며 조금씩 채워 나갔다고 했다.



“윤종빈 감독이 모든 대사 신이 다이나믹한 액션 같았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셨어요. 그게 말은 쉬운데 막상 해보면 너무 어려운 주문이잖아요.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큰일 나겠다란 생각이 계속 들면서 바닥을 쳤어요. 극 중 인물들은 내뱉는 말과 달리 책상 밑으로 칼을 날리고 있는 거잖아요. 서로 연기가 정확히 계산돼 있지 않으면 제대로 할 수 없더라고요.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는 눈을 돌리는 작은 움직임도 큰 의미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배우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게 됐는데 나만 힘든 게 아니란 걸 알았어요. 서로 간에 호흡을 정확히 맞춰가다보니, 점차 긴장감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황정민이 엄살을 부리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공작’ 속 인물들은 실제 말하는 것과 속에 있는 감정이 다른 걸 들키지 않아야 한다. 반면 관객들은 캐릭터의 속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 속에서 발화되는 긴장감과 에너지가 ‘공작’의 백미다. 그는 “스스로의 밑바닥을 보면서 고민이 깊어졌어요. 티 내지 않고 에너지를 갖고 가는 연기가 이렇게 어렵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다중적인 에너지와 느낌들이 잘 표현될까 걱정이 많았습니다.”고 말했다.

6년의 옥살이를 했던 흑금성. 그는 흑금성의 실제 인물인 ‘박채서’ 선생님을 뵙고 싶었다고 했다. ‘흑금성’의 실제 인물인 박채서 씨는 2010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6년 형을 선고받고 2016년 5월 만기 출소했다. 황정민은 “그 분의 행동이나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묘사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분의 눈이나 기운을 보고 싶었다. 에너지를 느껴보고 싶었다. ”고 ‘흑금성’의 결단과 선택에 대해 존경심을 보였다. 실제로 만난 박채서씨의 기운은 황정민에게 큰 의미를 남겼다.

“선생님을 직접 만났을 때 첫 느낌이 ‘눈을 읽을 수 없다’ 였어요. 마치 벽이 있는 것처럼 턱 막힌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 생활들을 오래 하셔서 인이 박히신 것 같았어요. 이렇게 느낌을 읽을 수 없던 건 처음이었거든요. 바위덩어리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나 첩보원이 되는 게 아니구나 싶더라니까요. 그래서 박석영을 연기할 때 상대방에게 눈을 읽히지 않는 느낌을 표현하도록 특히 신경 썼어요.”

배우 황정민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배우 황정민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황정민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배우 황정민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황정민이 출연하는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들이 있는 반면, 일부 관객들은 비슷한 작품에서 자주 만난다며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황정민은 위트 있는 답변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비슷하다는 지적에는 늘 관성을 깨려는 노력을 많이 해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관성이 쌓였을 수도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하게 돼요. 이번 작품은 뼈로 외울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그런데 (비슷한 연기이다고 지적하시는)그런 분들은 그렇게 많이 없다고 봐요. 천 명 중에 한 20명 정도가 그런 분들이고, 제 영화를 기다리는 분들이 980명이 있다고 생각해요. 전 980명이 더 좋고 사랑스러워요. 이분들을 더 신경 쓰고 싶어요. 무엇보다 한국 관객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좋아하세요. 그리고 황정민을 좋아하세요. 하하하.”

영화 ‘공작’으로 배우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은 황정민의 차기작은 윤제균 감독의 SF영화 ‘귀환’이다. ‘공작’ 이후 휴식기를 가진 황정민은 연극 ‘리차드 3세’를 원 캐스트로 소화해내며 연기자로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처음 새롭게 시작하는 배우처럼 백지상태가 된 것 같다” 고 말해 제 2의 황정민을 기대하게 했다.

“올 초 연극 ‘리차드 3세’ 무대에 선 것도 ‘공작’ 때문이었어요. 바닥을 치면서 나를 다시 보게 됐거든요. ‘내가 정말 모자라구나, 다시 처음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행스러웠던 게 많은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보내주시면서 좋아해주셨어요. 그때 오는 감동이 컸죠. 어떤 일을 할 때 진심으로 하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온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됐습니다. 늘 얼굴이 빨간 상태이긴 하지만, 제 몸 속은 하얗습니다. 또 언제 우주를 가보고, 우주복을 입을 수 있겠나. 어떻게 나올지 저도 궁금하고 기대가 됩니다. 연극 ‘리차드 3세’ 앙코르 공연도 계획 중입니다.”

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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