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발언대] 다양성과 건강한 혁신생태계

조현진 기획재정부 혁신성장본부 혁신창업팀 과장




상상력을 조금 동원했다. 어느 유인원 무리에 돌연변이 새끼가 태어났다. 어미는 난처하다. 엄지 뼈의 축이 나머지 네 손가락과 틀어진 새끼는 검치호랑이를 만났을 때 동료들처럼 네발로 재빨리 달아나거나 민첩하게 나무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처음으로 검지와 맞닿게 된 엄지손가락은 수백만 년 뒤 도구를 정교하게 다루고 파피루스에 기록을 남기는 데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생존을 위협하는 ‘장애’다. 남들과 다른 이 유인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리로부터 ‘받아들여져야’ 하고 보호받아야 한다. 이 ‘혁신적 엄지’를 물려받은 후손들은 언젠가 생존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것이다.

‘다름’을 포용하는 수준, 다양성의 스펙트럼은 혁신역량을 가늠하는 척도다. 고대 그리스, 중세 아랍, 르네상스 이후의 근대 유럽, 현대의 실리콘밸리에 이르기까지 다양성과 혁신은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다양한 생각의 이종교배는 혁신의 필요조건이다. 4차 산업혁명의 격변하는 환경에서 혁신생태계의 다양성은 국가의 흥망을 좌우할 수도 있다.


다양성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가치로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다양성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다. 인류 역사에서 다양성과 혁신의 시기는 사막의 오아시스만큼 드물다. 다양성은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보다 살리기 어렵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처럼 가장 약한 고리를 강화하는 것이 다양성 확대의 기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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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혁신성장 정책도 이러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생산 라인 공정 개선 같은 작은 혁신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큰 혁신까지 혁신의 스펙트럼은 넓다. 미래먹거리를 만들어낼 신산업 혁신도 중요하지만 취약한 주력산업, 중소제조업 및 서비스 산업 혁신, 영세자영업 등의 생활형 혁신도 중요하다. 이러한 약한 고리가 강해야 혁신생태계가 건강하다.

창업의 경우 청년 창업과 함께 중장년 창업, 교수·연구원 창업, 대기업 스핀오프 등 유형이 다양해져야 한다. 실패를 겪은 창업자의 재도전은 창업생태계에서 가장 약한 고리다. 정책금융기관 연대보증 폐지 등 개선이 있었지만 실패 트라우마와 오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인 차별 철폐 노력이 필요하다.

인재 양성과 교육생태계는 ‘입시-대학교육’으로 균질화한 다양성의 위기 상황이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교육을 적당히 헤엄치고 적당히 걷고 적당히 날 수 있는 ‘오리’에 비유했다. 우리나라의 표준적인 미래 인재들은 고교 전 과목에서 두루 우수한 성적을 받고 ‘인성’도 검증받아 대학에 입학해 좋은 학점을 만들어 졸업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현장에서 기본기부터 다시 익혀야 한다. 소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학습 속도가 느렸고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도 못했다. 얼마나 많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아인슈타인이 입시경쟁에서 뒤처져 좌절하고 있을까. 교육생태계의 다양성 확보가 시급한 이유이다.

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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