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중계동 불암산 자락에 위치한 백사마을은 ‘서울의 마지막 산동네’로 불린다. 아직도 대부분의 가구가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백사마을을 재개발하는 움직임이 속도를 내다 제동이 걸렸다. 지난 6월 재개발 설계 당선작이 결정된 후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으나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별 진척이 없다. 주민들이 안전성·경관 피해를 이유로 설계안 층수 조정을 요구했지만 설계자인 조남호 건축가가 저작권 인정을 요구하며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시행사인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는 설계자와의 계약 해지를 검토하고 있지만 조 건축가가 법적 대응을 시사하면서 문제가 더욱 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2일 SH공사·백사마을 재개발위원회 등에 따르면 SH는 조 건축가와의 설계 계약을 해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조 건축가도 이에 대비해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SH 관계자는 “지난 29일 조 건축가로부터 온 최종의견은 그동안과의 입장과 사실상 다르지 않다”며 “실무 단계에서 결정할 사안은 아니지만 계약해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 건축가는 “(계약해지에 대비해) 변호사와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사마을 재개발 논란은 지난 6월 서울시 국제공모전에서 조 건축가의 설계안이 선정되면서 촉발됐다. 이 지역은 그린벨트로 묶여 있어 개발을 위해 50%를 주거지 보전지역(임대주택)으로 건설해야 한다. 문제는 2~3층으로 건설된 임대주택에 맞춰 나머지 개발 지역의 3분의 2가 4~5층의 저층단지로 설계됐고 총 세대수 2,000세대를 맞추기 위해 불암산 자락에 25층의 고층 아파트를 배치하면서 불거졌다. 주민들은 고층 건물이 불암산의 경관을 해치며 안전 문제와 함께 저층 건물이 밀집해 동간 간격이 너무 좁다면서 고층 건물의 층고를 낮추는 대신 나머지 건물의 층고를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도 지난 7월 25층 아파트의 문제점을 지적해 새로운 설계안을 제시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조 건축가는 주민들을 설득하겠다며 설명회 개최를 요구했고 지난 10월 5일 설명회가 열렸지만 주민 투표 결과 기존 설계안에 대해 총 570명 중 1명만 찬성하고 567명이 반대하는 결과가 나왔다. 조 건축가가 도계위에 직접 설명하겠다고 요구했지만 서울시 측은 “똑같은 설계안을 다시 위원회에 상정할 수 없으므로 수정 없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SH는 지난달 22일을 시한으로 조 건축가에게 최종의견을 달라고 요구했으며 조 건축가는 ‘주민 의견을 반영하겠지만 먼저 도계위에 설명할 기회를 달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는 “층수 거래는 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SH 측은 건축가의 완고한 태도 때문에 재개발이 6개월 동안 공전한 데 대해 난감해 하고 있다. 주민들 사이에서 재개발 내용에 대해 논란이 발생하는 경우는 일반적이지만 건축가와의 이견으로 사업이 공전한 경우는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반면 조 건축가는 설계안의 저작권을 인정해달라는 입장이다. 그는 “주민들의 주장은 아파트의 경제적 가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결국 저작권의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이며 (건축) 분야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소송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개발위원회 측은 “결국 주민은 아무 의견도 낼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조 건축가가) 법적 대응 한다면 손해배상 청구까지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