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선의의 역설'만 쏟아낼 텐가

황정원 금융부 차장



카드수수료가 ‘선의의 역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것 같다. 정부가 발표한 1조4,000억원 규모의 카드수수료 인하 안에 따라 카드사들은 경영개선을 위해 전략적으로 비용 절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마케팅 비용 감축은 정부의 의도만큼 쉽지 않을 수 있다. 카드사들이 의무기한 3년이 지난 뒤 부가 서비스를 축소하려고 해도 소비자들이 소송에 나서면 법과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과거 법원은 ‘씨티은행 아시아나클럽 마스터카드’ 등의 판결에서 모두 소비자의 손을 들어줬다. 즉 마케팅 비용을 줄이기보다 인위적인 인적 구조조정과 함께 밴사와 콜센터, 카드 모집인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식으로 파장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 들어 유독 금융에서 이 같은 풍선효과가 쏟아져 나온다. 올해 2월부터 24%로 최고금리를 인하한 조치는 서민의 금리부담을 완화하기보다 오히려 금융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문제를 야기했다. 지난 10월 말부터 가계대출 증가세를 잡겠다고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 규제를 은행에 시행하면서 고DSR군인 서민들은 자금이 필요한 경우 제도권 밖으로 내밀려 신용등급을 떨어뜨리면서 고금리 대출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몰리게 됐다. 또 10년 이상 장기소액연체자가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재단까지 설립했는데 정작 신청자가 없는 역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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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보호라는 명분에 매달려 답을 미리 정해놓은 채 논의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니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초창기 현장의 목소리를 내고는 했으나 바뀌지 않는 결론에 염증을 느끼고 어차피 을의 입장이니 그냥 따라가기만 하겠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시장과의 교감·소통이 사라지니 시장 메커니즘 자체가 사라졌다. 원가 산정을 위한 카드수수료 개편 태스크포스(TF)라는 논의 기구가 있음에도 사실상 형식적이었다. 일각에서는 TF에서 이미 1조4,000억원의 인하 여력을 정해놓고 수수료 우대 범위를 조정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또 ‘카드산업 건전화 및 경쟁력 제고 TF’를 출범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매년 사업계획 첫 페이지에 ‘내년은 정말 힘들다고 합니다’라는 문구가 있듯 찬 바람이 불지 않는 해가 없다고 하나 여러 선행지표로 판단하건대 경기하강에 대한 불안감은 여느 해 이상이다. 한국은행이 1년 만에 기준금리를 0.25% 인상함에 따라 긴축의 고통은 한계기업 및 취약차주가 맞닥뜨리게 됐다. 서울의 핵심 상권마저 하나둘 붕괴하면서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나날이 심화한다.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아 기업들은 투자를 주저하고 내년 경영계획 수립도 하지 못하고 있다. 크레디트 사이클이 굉장히 나빠지면서 은행은 건전성을 예의주시해야 할 시기가 왔다. 금융을 언제까지 구휼을 위한 도구로만 여길 것인가. 정책 실패를 확인하고 수정하기에는 너무 늦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황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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