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완성차 업체들이 최악의 실적 부진을 보이는 국내 부품사를 압박하고 있다. 관세·물류비 절감을 이유로 중국 현지생산을 강요하며 납품 중단 카드까지 꺼내 들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판매 부진에 빠지면서 일감이 절대 부족한 가운데 협력사들이 국내 물량까지 중국으로 보낼 경우 고용 상황 악화는 물론 부품공급망이 무너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경북 경주시에 위치한 시트 전문 제조업체 A사는 최근 현대차 중국 합작 파트너인 베이징기차로부터 DTP-03(시트가 앞뒤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레일의 일종)을 중국 현지에서 생산하라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받았다. 베이징기차는 현지 공장에서 물량을 소화하면 물류비와 관세를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A사의 중국 현지법인이 위치한 산둥성 웨이하이에서 생산할 것을 요구했다. 베이징기차는 제안을 거부할 경우 물량을 다른 협력업체에 넘기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고용불안을 우려한 A사 국내 공장 직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지만 일감 확보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에서 중국의 이 같은 요구를 쉽게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A사는 지난 2008년 중국 산둥성에 공장을 세운 바 있다. A사는 이전까지 국내 공장에서 만든 부품을 중국 공장으로 보낸 뒤 가공을 거쳐 현지 완성차 업체에 납품해왔다.
A사 외에 다른 부품사들도 물량을 중국 공장으로 돌리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이후 베이징현대의 실적이 급격히 추락하자 합작사인 베이징기차는 원가절감을 압박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A사가 이미 중국법인의 지분 매각을 고려 중인 상황에서 베이징기차가 중국 현지생산 확대를 요구하는 것이 단순한 원가절감 차원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베이징기차가 자사 주도의 차부품 공급망을 확대해 현대차의 서플라이체인을 취약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베이징기차는 지난해에도 비용절감을 위해 대부분 한국 업체인 베이징현대의 납품사를 중국 현지 기업으로 교체할 것을 요구했으나 현대차가 이를 거부하며 부품공급에 차질을 빚어 생산이 중단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