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온돌서 책읽고 뒹굴고..빈 교실은 체육실로.."방학에도 매일 학교 가요"

■ 교육부 '공간혁신사업' 드라이브

획일화된 집단 수용 형태 벗어나

학생 친화형 학습·놀이공간 조성

정부, 전국 1,250곳으로 확대 계획

현장선 "자율성이 먼저" 우려도

유은혜(왼쪽)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조희연(오른쪽)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9일 서울 천일초등학교의 ‘상상나무도서관’에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유은혜(왼쪽)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조희연(오른쪽)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9일 서울 천일초등학교의 ‘상상나무도서관’에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낡고 춥던 도서관에 따뜻한 온돌이 놓였다. 선생님만 바라보던 ‘一’자형 교실 대신 ‘ㅁ’자형 모둠교실이 생겼다. 차량과 학생들이 뒤얽혔던 교문 앞은 계단으로 바뀌었고 아무도 안 쓰던 빈 교실은 체육실로 탈바꿈했다. 지난 2017년 9월부터 1년 사이에 서울 천일초등학교에 찾아온 변화다. 9일 천일초를 찾은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놀랍고 아름다운 변화”라며 “더 많은 학교가 이처럼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체험활동 품는 ‘학교 內 아지트’=올해 공간혁신사업 우수사례로 선정된 천일초는 도서관과 놀이공간 조성에 가장 공을 들였다. 미국 필라델피아 미래학교와 스웨덴 비트라 학교처럼 한 공간에서 지식 습득과 체험이 한꺼번에 이뤄지게 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편히 앉거나 누울 수 있게 책상과 의자를 줄이고 온돌을 깔았다. 벽을 유리로 만들어 바깥과 장벽을 낮추고 의자마다 놀이교구를 비치했다. 아이들은 손뼉 치며 변화를 반겼다.


천일초 학생 정수민(13)양은 “사회 수업시간에 도서관에 와서 나라별 여행계획 짜는 것을 연습했는데 너무 재밌었다”며 “다른 수업도 다 여기서 하고 싶을 정도였다”고 했다. 이루미(13)양도 “전에 있던 도서관은 북쪽에 있고 추워서 한 번도 안 갔는데 새로 지은 도서관은 너무 좋다”며 “방학인데도 매일 학교에 온다”고 했다. 두 학생처럼 천일초 도서관이 바뀐 뒤 책을 빌리러 오는 학생 수는 170명에서 270명으로 크게 늘었다.

1115A30 교육부 공간혁신


◇열린 학교공간, 창의력을 품다=우리나라의 초중고교는 긴 복도와 규격화된 교실 구조를 50년 이상 유지해왔다. 베이비붐 세대를 수용하기 위해 1969년 제정된 ‘학교 설비 및 설비 기준령’을 따랐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말 기준령이 폐지된 후에도 학교 공간은 획일화된 설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창의력을 발산하기보다는 학생들을 집단으로 수용하는 훈련소나 감옥 형태를 띠게 됐다.


“이런 교실에서는 더 이상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울 수 없다”는 교육계 안팎의 문제의식이 조금씩 학교를 바꿔나갔다. 신축 학교들부터 친환경 소재를 깔거나 다양한 색깔을 입히기 시작했고 2017년부터는 서울교육청을 시작으로 17개 시도 교육청이 학교 공간 변화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전라도 광주 마지초등학교의 김황 교사는 지난해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 하는 제자를 위해 ‘엉뚱무한상상실’을 꾸렸다. 상상한 것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발명교실이다. 학생들은 한 해 동안 상상실의 여러 재료를 활용해 자신들만의 휴식 및 토론 공간을 4곳이나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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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교육청 주관 ‘학교시설 감성화 사업’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강원도 양양 현남중학교도 교실과 교실 사이에 학생들이 모여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학교는 벽면 전체를 여름철 바다 그림으로 꾸몄다가 “남녀 성 역할이 지나치게 구분돼 있다”는 학생들의 지적이 이어지자 여성 서퍼를 다시 그려넣기도 했다. 학생들은 이곳에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단체활동을 즐긴다.

박성철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정책지원연구본부장은 “영국과 미국 등 공간혁신을 주도한 선진국을 보면 새로 공간을 짤 때 반드시 학생들의 의견을 폭넓게 들었고 교육과정과도 연계했다”며 “학교 사정상 모든 과목별 공간을 개축할 수 없으므로 과목별 행동 특성을 고려해 음악과 체육, 국어와 사회 등 비슷한 과목을 묶으면 공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부 의지 높지만…교사·학생 “자율성이 먼저”=학교별로 알음알음 추진하던 공간혁신사업은 올해부터 정부부처가 직접 챙기는 사업이 됐다. 교육부는 “매년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별로 10∼20개 학교를 선별, 투자해 1,250개 학교까지 사업 참여자를 늘리겠다”며 “정책연구가 마무리되는 대로 놀이·휴식·발명공간 등 유형별로 공간별 표준모델을 마련해 전국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간혁신을 원하는 학교당 4억원씩 지원해 5년간 총 5,000억원을 투입하고 건축 전문가도 파견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교차한다. 의지를 보여준 것은 반갑지만 정부가 특정 사례를 ‘표준’으로 내놓으면 학교들이 우후죽순 따라갈 가능성이 있어서다. 창의력도 떨어지거니와 학생 의견도 배제되기 쉽다. 실제로 강원도와 경기도의 일부 학교는 카페를 멋지게 꾸며놓고도 문을 닫아놓아 쓰지 못하게 만들거나 학생 생활공간과 멀리 떨어진 곳에 설치해 사실상 새 공간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김태은 광주광역시 교육정보원 교사는 “획일화된 모델을 제공하기보다 일선 학교에 자율성을 주는 게 먼저”라며 “정부는 공간혁신을 시작하려는 교사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매뉴얼을 개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정영린 교육부 교육시설과장은 “오늘날의 건축에 표준이라는 말을 쓰지 않은 지 오래됐고 정부 차원에서도 삭제하려 했는데 반영이 안 된 것 같다”며 “학교들의 다양한 공간모델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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