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포한 국가비상사태를 저지하기 위한 결의안을 미국 하원이 표결에 부쳐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다. 일각에서는 일부 공화당 의원들의 이탈로 상원에서도 결의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클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거부권 행사를 공언한 상태라 국경장벽을 둘러싼 트럼프 대통령과 의회 간 힘겨루기가 갈수록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26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날 미 하원은 국가비상사태를 막는 법안을 찬성 245표, 반대 182표로 통과시켰다. 지난 1976년 국가비상사태법이 제정된 이후 의회가 이를 막기 위해 표결을 시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비상사태법에는 의회가 비상사태를 종료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대통령이 이를 갱신하지 않을 경우 180일 뒤 비상사태가 자동 종료하게 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연방정부 셧다운(부분 업무정지) 사태를 끝내기 위한 예산안에 서명하면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바 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장벽건설을 위해서는 수십억달러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며 군 건설비용을 36억달러를 포함해 여러 경로를 거쳐 67억달러의 추가 비용을 조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WP는 “민주당 235명과 공화당 197명은 각각 찬반 당론에 따라 투표를 진행했지만, 공화당 의원 13명이 당 방침과 달리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결의안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포는 삼권분립에 따른 의회 예산권 침범에 해당하기 때문에 저지돼야 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은 “건국의 아버지들에겐 위대한 비전이 있었다. 그들은 왕을 원하지 않았다”면서 “그들이 권력 분립의 심장이자 영혼인 헌법을 만든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날 하원에서 결의안이 통과됨에 따라 이제 공은 상원으로 넘어갔다. 상원은 하원 표결 후 18일 이내에 표결을 진행해야 한다. 현재 미 상원 의석수는 공화당 53석, 민주당 35석, 무소속 2석으로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다. 결의안이 상원을 통과하려면 민주당과 무소속 의원 47명이 모두 찬성하더라도 공화당에서 4명 이상이 이탈해야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수산 콜린스, 리사 머카우스키, 톰 틸스 공화당 상원 의원 등 3명이 하원 결의안에 찬성의사를 표하고 있다”며 “공화당 의원 1명만 더 돌아서면 단순 다수결로 결의안이 상원을 통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존 바라소 공화당 상원 의원은 뉴스채널 MSNBC와의 인터뷰에서 “(결의안이) 실제로 상원을 통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결의안이 가까스로 상원을 통과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장벽 건설을 강행할 수 있겠지만, 의회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남은 임기 동안 국정혼란이 불가피하다. 이미 미 연방 50개주 가운데 거의 3분의 1에 달하는 16개 주(州)가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를 저지하기 위한 위헌 소송을 잇달아 제기하고 있다. 이날 백악관 관계자는 “국가비상사태 선포는 대통령의 합법적인 고유권한”이라고 강조했다. WSJ은 이날 공화당 상원 의원들이 비공개 오찬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법무부 변호사 등과 함께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문제와 관련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딘 헬러 전 공화당 상원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남부 국경지대에 선언한 것은 국가비상사태가 아니다”라며 “현재 우리나라의 비상사태는 22조달러에 달하는 국가부채”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