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8년 3월13일, 일본의 혼슈와 홋카이도를 잇는 ‘세이칸 터널’ 철도가 완전히 뚫렸다. 1961년 첫 삽을 뜬 후 27년 만의 개통. 길이가 53.85㎞인 세이칸 터널은 2016년 6월 스위스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57.10㎞)이 개통되기 전까지 세계 최장 터널의 자리를 지켰다. 해저 구간 최장이라는 기록도 1994년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채널터널(Channel Tunnel)이 뚫리며 깨졌지만 아시아에서는 여전히 1위다.
기록상으로 세이칸 터널의 첫 구상이 나온 시기는 1923년. 종전 직후인 1946년 학문적 지질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1954년 갑자기 탄력이 붙었다. 태풍경보 발령에도 바다가 잔잔하다며 출항한 선박 중 여객선 1척과 화물선 4척이 침몰해 1,155명이 죽거나 실종되는 참사를 겪고는 거센 비바람에도 안전한 터널을 뚫자는 합의가 이뤄졌다. 일본은 사업 진행에 특유의 신중함을 보였다. 1961년 정부가 주도하는 예비공사를 시작해 1964년 시공법인을 세우고 1971년 본공사에 들어갔다.
공사도 힘들었다. 난공사 구간이 많아 33명의 인명 피해를 냈다. 예산도 불어나 사업 구상에서 5,384억엔으로 책정됐던 공사비가 사업을 시작한 뒤 6,870억엔으로 늘어나고 결국은 9,000억엔 이상이 들어갔다. 시간과 인명을 투입해 완공한 세이칸 터널은 성공했을까. 경제로만 본다면 낙제다. 이용 여객이 예상에 훨씬 못 미쳐 갈수록 화물 운송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다. 만성적인 적자 구조를 갖고 있다. 다만 국민 통합의 효과가 없지 않다. 홋카이도에 대한 차별과 소외가 엷어져 정치적 결속이 강해졌다.
세이칸 터널이 주목받는 다른 이유는 ‘모델’이라는 점에 있다. 한일 해저 터널과 한중 해저 터널, 목포-제주도 해저 터널, 중국-대만 간 양안 터널 구상의 원조다. 일본 일각에서는 한일 해저 터널이 여의치 않을 경우 홋카이도와 사할린을 연결하는 해저 터널을 뚫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하나같이 세이칸 터널보다 공사 구간이 길고 지진 발생 확률이 높은 단층대에 속해 있음에도 논의가 끊이지 않는다. 중국은 발해만 해저 터널 공사를 밀어붙이고 있다. 한중일이 토목공사 선호 유전자라도 공유하는 것인지, 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것인지 구상이 실현되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세계 최장 해저 터널이 모두 동북아에 생길 판이다. 일본에서도 자동차 전용 ‘제2 세이칸 터널’ 논의가 일고 있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