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하나금융 ICC소송결과 이달말 공개] 한국 정부의 직간접 개입 정도가 하나금융 배상규모 좌우
지난 15일 오후 하나금융지주 사무실. 갑자기 비상이 걸리면서 법무팀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법무팀은 모든 인적네트워크를 동원해 안테나를 싱가포르로 향했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자회사 LSF-KEB 홀딩스가 지난 2016년 8월 하나금융을 상대로 14억430만달러(약 1조5,700억원)를 배상하라며 낸 소송에 대해 국제상공회의소(ICC)가 최근 내부적으로 최종 판정을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론스타가 하나금융지주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론스타와 한국 정부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5조3,000억원대 규모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보다 먼저 결론이 난 것이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ICC는 하나금융지주를 상대로 론스타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최종 입장을 정리해 오타 감수 등 마무리 작업을 거쳐 2주 내에 판정문이 소송 당사자들에게 송달된다. 이르면 이달 말 하나금융지주가 최종 판정문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은행 부문 강화 위해 최근 롯데카드 인수전에 뛰어들고 1조원 가량의 탄환을 준비한 하나금융지주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라워하는 것은 물론 패소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당혹스러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하나은행 관계자는 “ICC 측이 최종 판정을 내리고 절차에 따라 결정문 송달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시 론스타가 모든 조건에 합의했는데 뒤늦게 문제를 제기해서 우리가 손해배상을 하게 되면 황당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은 론스타측이 한국 정부와의 ISD에 패소할 경우에 대비해 하나금융에도 책임을 묻기 위한 소송이라는 분석이 많다. 매매 시점이 5년이 지난데다 우리 정부와 이미 ISD를 통해 책임 여부를 다투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송을 낸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었다. 론스타 측은 “당시 하나금융 관계자가 가격이 높으면 정부 승인을 받는 데 문제가 생긴다는 말을 전해 매각 과정에 상당한 압박이었다”며 “한국 정부가 사실상 개입해 승인절차가 지연되면서 제값에 팔지 못해 손해를 봤다”고 문제 삼았다. 반면 하나금융 측은 “당시 협상팀이 론스타 측에게 천문학적인 돈을 벌고 해외로 나가려는 모습이 ‘먹튀’라는 국민적 반감이 상당해서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사회적 분위기를 전해줬을 뿐”이라고 맞섰다.
그동안 론스타가 한국에서 보여준 많은 사태는 우리나라 금융권에 많은 상처를 입혔다. 외환은행을 ‘한입에 삼키기 좋은’ 부실은행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전방위적 로비로 우리 정부 관료가 동원됐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자들에 대해 구속영장이 12번이나 청구되는 등 논란이 컸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1조3,800억원에 인수했지만 3조9,00억여원에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해 2조가 넘는 매각 이익을 챙겼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은 결국 해외 투기자본에 대한 국민적 반감만 확산시켰다. 이런 탓에 ICC 소송 결과 론스타의 과실이 인정된다면 향후에 나올 ISD 청구액도 상당 부분 기각될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ICC 소송 배상액이 3,000억~5,000억원 사이에서 조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ISD 중재인으로 활동했던 한 변호사는 “한쪽 당사자에 일방적으로 기우는 판정보다는 청구액 일부만 인정할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 정부의 직간접 개입 정도를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전망했다.
[론스타-하나금융 ‘ICC 소송’ 결과 이달말 공개]‘5.2조’ ISD 소송 판정에도 영향...“韓, 1조만 배상해도 사실상 승소”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는 론스타 대 한국 정부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대결이 최종 결과 통보만 남겨둔 상황에서 먼저 나온 ICC 결론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ICC 소송이 먼저 선고될 경우 ISD 판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ICC 판결에 이어 곧 결정이 나올 ISD와 연계할 예상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다. 우선 ICC 소송에서 하나금융이 패소할 경우다. 하나금융이 소송액 전액 또는 일부를 보상하면 ISD에서 한국 정부의 책임은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론스타가 하나금융으로부터 손해배상을 일부 받으면 ISD에서 한국 정부 배상액을 낮게 결정해도 부담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ICC 소송이 먼저 끝난다면 ISD 판정부는 그 결과를 분명 참고할 것”이라며 “배상액을 산정할 때 쟁점이 유사한 ICC 소송 결과가 중요한 가늠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반면 하나금융이 승소한다면 오히려 한국 정부가 모두 책임져야 하는 탓에 부담이 커지게 된다.
국제중재업계 일각에선 ICC 결과가 이달 말 나오면, ISD 결과는 이르면 6월에 나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형 로펌 소속의 한 국제중재 전문가는 “하나은행이 5,000억원 수준의 배상액이 나온다면 론스타가 요구한 배상에서 이를 뺀 금액도 ISD 판정부로부터 받아내기 위해 사활을 다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때문에 정부가 1조원 안팎으로 ISD 배상 규모를 줄이기만 해도 사실상 승소한 것이라는 게 국제중재 변호사들의 견해다.
일단 분명한 건 두 소송의 판정부가 사건의 일정과 관련해 서신을 보내는 등 서로 소통해 왔다는 사실이다. 한 국제중재 전문 변호사는 “두 소송은 대상만 다를 뿐 외환은행 매각에 따른 손해배상이라는 취지가 같은 사건이어서 ISD는 ICC 결과를 바탕으로 최종 결과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오지현·이현호기자 ohj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