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원전은 친환경 핵심…에너지정책, 정치 아닌 과학적 접근을"

[에너지믹스, 해외서 배운다]

<중>탈원전 속도조절 나선 대만

-장산정 전 행정원장 인터뷰




“한국과 대만은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특히 환경문제나 전력 수급 여건에서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두 나라 모두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감축하기 위해서는 원자력발전소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장산정 전 대만 행정원장(총리)은 지난달 10일 본지와 대만 타이베이시 내 그의 집무실에서 만나 원전을 바라보는 그의 견해를 가감 없이 보여줬다. 미세먼지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양국에서 환경을 고려하는 동시에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서는 원자력발전소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철학도 밝혔다. 그는 “한국과 대만은 전력이 부족할 때 다른 나라에서 끌어올 수가 없는 구조인 만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환경과 전력 수급 측면 어느 쪽을 봐도 성급하게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장 전 행정원장은 학계와 기업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기술관료 출신 정치인이다. 코넬대에서 환경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10년 넘게 대만 컴퓨터업체 에이서와 구글 등 민간 기업에서 근무했다. 지난 2014년에는 정식 부처로 승격된 과학기술부의 첫 번째 장관으로 임명됐고 같은 해 8월에는 대만 행정원 부원장을 지냈다. 2016년에는 한국의 총리급인 대만의 행정원장으로 일하다 5월 대선에서 민정당이 승리하며 물러났다.

이후로도 대만 사회에 끼치는 그의 영향력은 컸다. 지난해 11월 대만의 국민투표에서 탈원전 반대 진영이 승리할 수 있던 데도 장 전 행정원장의 역할이 중요했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탈원전만큼은 정치적 입장을 따지지 않고 철저히 과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철학을 강조하며 대중에게 신뢰를 얻은 덕분이다. 장 전 행정원장은 “내년 대만의 총통 선거에 출마하기로 마음을 굳혔다”며 “소속 정당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면서 탈원전 문제와 같이 전문적인 영역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원전, 이산화탄소·미세먼지 배출 ‘0’

LNG도 환경 측면에선 허점 많아

韓, 석탄·원자력발전 동시에 줄이면

2년전 대만처럼 블랙아웃 배제못해

전기요금도 단기간 크게 오를수도


대만 국민이 탈원전 정책에 제동을 건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환경적인 측면과 전력 수급 문제가 그것이다. 장 전 행정원장이 한국의 탈원전 정책에 우려를 표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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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원자력발전소야말로 가장 친환경적인 전력 공급원이라고 주장하며 “원자력발전소는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온실가스가 늘어날 걱정이 없고 미세먼지도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원자력발전소가 담당했던 전력량의 대부분을 대체해야 하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은 환경적인 측면에서 허점이 많다는 시선도 드러냈다. 장 전 행정원장은 “LNG 발전은 석탄 발전보다 환경오염을 덜 유발할 뿐 오염물질 자체가 배출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며 “겨울철만 되면 고농도 미세먼지로 고통받는 한국에서 원자력발전을 LNG 발전으로 완전 대체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분석했다.

한국과 대만 정부가 추진하는 녹색 에너지 정책이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우리 정부는 최근 제3차 에너지 기본계획 초안을 공개하며 신재생 에너지 발전 비중을 오는 2040년까지 최대 35%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대만 정부 역시 2025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20%로 높일 계획이다. 장 전 행정원장은 “신재생 에너지 중 기본이 되는 것이 풍력이나 태양광인데 예측이 불가능한 자원인 탓에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어렵다”며 “기본 설비도 지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단기간에 비중을 급격히 높인다는 것은 정치적인 주장일 뿐 실현 가능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특히 한국이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석탄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의 비중을 모두 줄이는 것은 위험성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대만과 마찬가지로 2017년 8월 대만에서 일어난 대정전(블랙아웃)으로 828만가구에 정전이 발생하고 도시 일대가 마비됐던 사태를 한국이 겪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대만에서는 원전을 중단하지 않아 전력 예비율이 15%에서 1.7%까지 떨어질 일이 없었다면 대정전의 피해가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장 전 행정원장은 “한국이 석탄과 원자력의 비중을 줄여나간다면 결국 신재생 에너지와 LNG 발전으로 이를 대체해야 한다”며 “사실상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자원이 LNG 발전밖에 남지 않는데 운송·보관이 쉽지 않고 가격 부담이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탈원전 정책의 급속한 추진은 결과적으로 전기 요금 상승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한국과 대만 정부 모두 국민들에게 전기 요금 인상이라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결단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실제 대만 정부는 2016년 대선 당시만 해도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 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며 홍보했다. 그러나 전력 수급 문제가 불거지면서 2025년에는 전기 요금을 30% 올릴 예정이다. 장 전 행정원장은 “지난해 탈원전 정책과 관련한 국민투표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전기 요금 인상에 대한 대만 국민들의 불만”이라며 “한국 전기 요금 역시 지금 당장은 올리겠다고 발표하지 않았지만 조만간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기 요금 상승에 따른 산업계의 부담 가중도 큰 문제라는 입장이다. 장 전 행정원장은 “한국과 대만 모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전력 원가에 영향을 크게 받는 산업을 주력으로 한다”며 “탈원전으로 단기간에 전기 요금이 급등하거나 전력 수급에 이상이 생기면 국가 전체에 충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한국과 대만 모두 정치적인 고려 없이 객관적인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탈원전을 둘러싼 과학적인 사실을 환경·산업·전력 측면에서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뜻이다. 장 전 행정원장은 “공신력 있는 국제 조직으로부터 탈원전 정책을 평가받는 동시에 원전의 안전성을 어떻게 확보해나갈 것인지 국민에게 알려 나가야 한다”며 “전문가들에 의해 도출된 결과를 존중해주는 것에서 시작하면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갈등을 줄여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타이베이=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정순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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